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이미 몸에 배어버린 상사들의 눈에는 불합리 함에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내가 고깝게 비쳐 그와 관련된 쓸모없는 잔소리를 가끔 듣곤 한다. 하지만 일 때문에 크게 혼나 보거나 타박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내가 이전까지 겪었던 상사들은 권위 내세우기를 좋아하며 본인에게만 대단하게 느껴지는 경험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미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로 만나게 된 어른의 형상을 한 상사는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음을 또다시 일깨워주었다. 출근 첫날, 내가 들은 환영의 인사는 “몇 살이야? 27살?, 여자 나이 끝났네”였다. 이렇게 그는 직장에서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인간 1호가 되었다.
상사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그 뒤로도 막말을 해댔고 다이내믹한 회사 생활을 선사해 주었다. 이 신 유형은 알면 알수록 탐구 대상이다. 대표님이 참석하는 회의 시간이 되면 본인의 실수를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덮어 씌우는 것은 기본이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큰 목소리로 아는 척하며 능력 있는 직원의 탈을 쓰고 다녔다. 일을 할 때도 더 정리해갈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자료를 만들어가면 칭찬은커녕 타박하기 일쑤였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방식과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메일 형식을 강요했다.
어디 그뿐이랴. 부하직원이 진행하고 있는 업무는 누구보다 상사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외부로 보내는 협력사와의 메일에 참조를 걸면 보지 않으니 빼라고 난리 쳤고, 또 빼고 나면 진행과정을 뻐꾸기처럼 물어댔다. 그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길 바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다, 씹어서 삼키는 것까지 도와드렸어야 성에 찼을 듯싶다. 정말이지 월급은 왜 받는지 모르겠다.
보통의 20대들은 학교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간의 유형과 매일 새롭게 마주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선망의 대상으로 쳐다봤던 어른은 크고 보니 더 이상 다 같은 어른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회사라는 곳은 자기보다 어리고 사회 경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날로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 앉아서 계산하고 있는 수학쟁이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곳인 것 같기도 하다.
수학쟁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똑같은 수학쟁이가 되어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되려 상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 그를 보며 깨닫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