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록 Jun 14. 2021

무작위 01

창문


왜 저 많고 많은 창문 중에 내 것은 하나도 없을까.


우리집은 늘 빌라, 혹은 주택이었다. 내 것이든 내 것이 아니든, 혹은 잠시 빌린 형태이든 그랬다. 대신 좋은 음식을 매일매일 먹었고, 책은 늘 쌓아둘 수 있었고, 컴퓨터는 고장이 난 즉시 교체했다. 교복을 입을 땐 그런 우리집이 아주 조금 부끄러웠다. 사실 ‘많이’에서 조금 덜어낸 만큼 그랬다. 자그맣던 내가 덕지덕지 붙인 글라스데코가 붙은 창, 그걸 남들이 바라보는 게 수치스럽기도 했다.


몇 달 전, 처음으로 ‘아파트다운 아파트’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동경해온 것과는 달리, 각진 건물 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또 잔뜩 네모였다. 편의시설을 얻는 대신 평수를 줄였기에 책과 오래된 전자기기를 모조리 버려야 했다. 높은 층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아득히 멀리 밀어냈으며, 혼자일 적 온 집안을 채워주던 CD 플레이어는 층간소음의 주범이 되었다. 내가 그들을 버린 것인지, 그들에게서 버려진 게 나인 것인지, 그런 혼란이 인다.

작가의 이전글 어제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