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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n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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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도 되나요


할 일을 끼적일 땐 아무 영상을 재생시킨다. 누군가 공부를 하며 젤리나 빵을 주워먹는 것과 비슷하다. 뜻도 모를 노래들을 흥얼거리던 노트북이 곧 잔잔한 나레이션과 밋밋한 효과음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그러려니, 마저 쳐내야 할 것들을 마구 해치우는데, 딱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 울어도 되나요 "


물음표도, 느낌표도, 마침표도 붙지 않은 그대로의 문장. 이미 그득그득 눈물을 담고 있던 눈이 시선에 걸린다. 평소처럼 힐긋 보다가도 재차 제 것에 몰두하려다, 다 때려치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눈에 담았다. 얼마나 참았나, 인터뷰 시작부터 눈이 발갛다.


청년의 고독사. 우리나라 고독사의 10%는 30세 이하이며, 보통 자의 없는 과정을 거쳐온 1인 가구인 경우가 많다. 전국 기준 하루에 열한 명.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누군가의 불행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왜’라는 생각을 덧붙였다. 다행히도 문화인류학과는 ‘왜’를 함께 파고들어 주는 학문이었다,만 내가 그에 충실하지 않아서인지 아직까지도 물음표를 짓게 만드는 일이 한 바가지다. 왜 혼자 죽었을까. 왜 혼자 아팠으며, 왜 혼자 울어야 했고, 왜 자신의 권리를 말하지 못했는가. 다만 너무 많이 아팠으며, 혼자 쏟아낸 눈물이 일정선을 넘어서였고, 외칠수록 모질게 등을 돌리는 이들 틈에 덩그러니 남겨져서, 영상은 그렇게 말한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타파할 힘을 가졌어야지, 하는 의도의 ‘왜’는 단연코 아니다. 그러니까 누가, 사회라면 어떤 사회가 본인의 울음마저 타인에게 허락받아야 터뜨릴 수 있는 것이 되게끔 만들었을까. 묘한 죄책감과 동질감이 흐른다. 


그래도 함께 같은 세상을 살아주면 좋겠다만, 그럼에도 이곳에 남으라는 강요는 못하겠다만, 그보다 더 간절히 그들의 표현을 빌어 본다. 나와 당신들이 죽지 않고도 보이는 사람이 되기를, 마침표는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떠올려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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