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언젠가 한 번쯤 시도해보고는 싶지만 막상 용기가 나질 않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무더기로 있다. 해봐야지, 해봐야지 하면서 막상 머릿속 생각으로만 계속 맴도는 그런 일들, 바로 '버킷리스트 목록'이다. 핸드폰 메모장에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몇 년 전부터 빼곡히 적어놓았지만, 놀랍게도 그중 실천의 문턱까지 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쯤이라도 해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에 옛날 옛적 언젠가 작성해 핸드폰 메모장 저 아래 구석으로 밀려가버린 버킷리스트 목록을 눈을 씻고 다시 훑어보아도, 정말 어쩜 시도를 해본 게 단 한 개도 없었다! 해보고 싶은 것은 한 트럭이었지만, 막상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귀찮음으로 가득한 이런 나의 행태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정말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시 추려 버킷리스트를 재작성해보는 시간을 가졌다(9. 감사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래).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씩, 차근차근 나의 꿈의 여정으로 다가가려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견고한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생각을 생각으로만 남기지 않고 실제로 행동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아무리 거창한 계획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나의 삶은 아무런 파동도 일으키지 않은 채 그저 쳇바퀴처럼 굴러가게 될 테니까. 나는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줄곧 현재의 내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 내 버킷리스트 목록 중 제일 위에 있는 것에 착수해보기로 했다. '다양한 로푸드 디저트 만들어 보기'가 그것이었다.
'나중에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이런 들뜬 마음을 품고 나중을 기약하며 sns에서 봐두었던 로푸드 디저트 레시피를 저장만 해두었던 것이 아마 수십 개는 될 것이다. 내가 우울증을 겪으며 정체된 삶을 사는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는 한 내가 바라던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행해야 한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 따위가 아니라 단순한 취미 활동일 뿐일지라도, 단순히 그 자리에 고여 있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미루는 것을 이제 그만 멈추고 지금 당장부터 로푸드 베이킹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로푸드 베이킹을 하기에 앞서 갖춰야 할 것들이 꽤 많았다. 일단 로푸드 디저트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푸드프로세서'라는 기기가 필요했다.
'아, 그렇지… 여기서 막혔었지…'
예전에도 로푸드 디저트를 만드는 것에 도전해보려다, 이 생소한 기기를 구매해야 한다는 말에 헉! 해서 그냥 나중에 사자며 미뤄뒀었다. 막상 이 주방 기기를 사놓고 나중에 요리하는 것에 흥미를 잃어 주방 한 구석에 부피가 꽤 있는 이 기기를 처박아 놓기만 할까 봐 걱정 됐던 것이었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냐?'
이제 미루는 건 여기까지다. 나는 바로 인터넷으로 그동안 벼르고 별렸던 푸드프로세서를 드디어 질러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로푸드 디저트를 만들려면 일반 베이킹을 할 때 필요한 베이킹 도구들, 가령 내가 그토록 만들어 보고 싶었던 '로푸드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만들려면 케이크 틀이 또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것도 구매했다. 그런데 또 끝이 아니었다. 베이킹을 하려면 베이킹에 들어갈 식재료가 또 필요했다. 이 로푸드 베이킹이라는 것이 밀가루 대신 견과류를 베이스로 하는 것이라 각종 견과류에, 거기다 단맛을 내기 위한 대추야자, 베이킹에 필요한 바닐라 추출물 등등등, 필요한 식재료를 모조리 구입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취미활동은 장비빨이라더니, 이것저것 구입하다 보니 초기비용이 꽤 들었다. 그래도 필요한 물품들의 주문을 모두 완료해 놓고 나니, 빨리 택배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배송 추적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기다리는 시간이 괜스레 설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모든 용품들이 집에 도착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에 잠시 압도되었다가도, 택배 포장을 뜯으며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이 일을 하고야 마는구나.'
푸드프로세서를 처음 써 봐서 조립하는데 약간의 버벅거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 버킷리스트 도전, 시작이다!!
일단 로푸드 베이킹으로 '로푸드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견과류와 대추야자를 물에 불려주었다. 이 케이크에는 실제로 치즈가 들어가지 않으니, 치즈와 유사한 맛을 내기 위해 캐슈너트과 레몬즙을 사용했다. 내가 예전부터 그토록 로푸드 베이킹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재료에 어떠한 유제품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유제품을 먹으면 얼굴에 여드름이 올라오는 처지인지라 로푸드 베이킹은 마치 나에게는 신세계와도 같은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신세계와도 같은 베이킹을 나는 그동안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비로소 도전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새로 산 푸드프로세서에 재료들을 넣고 갈아주니 마치 빵 반죽처럼 재료들이 뭉처져서 되직해졌다. 반죽이 만들어지자, 내가 그동안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내 버킷리스트를 드디어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더 실감 났다. 그렇게 완성된 반죽을 케이크 틀에 잘 펴주고 냉동실에 반죽을 넣어두었다.
일반 베이킹과 로푸드 베이킹의 차이점은 일반 베이킹은 오븐에 반죽을 굽지만, 로푸드 베이킹은 냉동실에 재료를 얼려서 굳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푸드 베이킹을 로푸드 '베이킹(굽기)'이라고 칭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하는 방식만 보면 로푸드 프리징(freezing 얼리기)이라고 해야 할 것만 같다.
어찌 되었던, 몇 번의 반죽 냉동과정과 기다림의 끝에 마침내 케이크 모양을 갖춘 완성품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눈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케이크 위에 블루베리를 촘촘히 얹혀 장식도 해주었다. 영롱한 보랏빛의 케이크가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군침을 돌게 했다. 드디어 내가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던, 죽기 전에는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그 로푸드 블루베리 치즈케이크가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치즈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캐슈너트과 레몬즙의 조합이 정말 치즈케이크의 맛과 흡사했다. 그리고 거기에 블루베리가 첨가가 되어 영롱한 보랗빛 색감이 되니 흡사 블루치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맛이구나…'
이게 뭐라고… 막상 만들어보니 그렇게 대단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작정 해보면 되는 건데,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던 걸까?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음미하며 저장해 두었던 레시피 목록을 살피다 보니, 이번엔 로푸드 도넛 레시피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도넛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다음엔 이걸 만들어 봐야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저장해 둔 베이킹 레시피에 모조리 다 도전해 볼 테다! 그렇게 나는 다음 로푸드 베이킹에 필요한 도넛 틀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