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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글나눔 Dec 14. 2021

K드라마에서 한문 찾기

'연모' 보면서 한시 공부

넷플릭스에도 방영중인 KBS드라마 '연모'가 종영까지 단 1회를 남겨두고 있다. 남장 여자의 세자저하라는 컨셉이 과연 스토리가 되긴 하는건가 싶은 의구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지만 배우들의 호연이 '이 정도면 말이 된다고 치자!'라고 너그럽게 넘길만한 개연성을 만들어 냈다. 박은빈 배우 진짜 최고.


예전부터 이런 퓨전사극을 좋아했다. 너무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는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퓨전사극은 배경만 조선시대일 뿐 판타지 영화처럼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게다가 한문 공부를 하고 나서 부터는 사극 중에 나오는 한문이 무슨 내용일까 찾아보는 재미도 생겼다. 드라마 소품으로 나오는 글씨들은 모두 서예를 전문으로 하신 분들이 대필을 해 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다.


연모 19화에서는 역모를 계획한 원산군이 동생 이현에게 남긴 시가 있다. 지난 주 18화 예고에서 형인 원산군에게 칼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드라마 게시판에는 과연 현이가 죽은 것이냐, 아니면 예고편의 낚시일 뿐인가 하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의 바램대로 안 그래도 애절한 서브남주는 죽지 않고 마지막까지 전하에게 원산군의 소식을 알려줄 것 같다.

연모19화 중_형 원산군이 남긴 편지를 읽는 이현

그나저나 원산군은 제대로 역모를 할 생각이 있기는 한건지.. 살려두면 뻔히 전하에게 달려갈 동생을 죽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데리고 가지도 않고 방치를 하다니 말이다. 역시 개연성을 따지면 안 된다. 그저 훤칠한 이현의 얼굴을 마지막까지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원산군이 비장하게 현이에게 남길 시를 쓰는 중이다.

긴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물결 하나 겨우 일다 많은 물결 번져가네
고요한밤 물은 차고 물고기는 아니무니
빈 배 가득 나의 꿈을 싣고 돌아오네
 - 원산군의 독백_연모 19화 중

(개인적으로 사극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건데 소품팀에서 붓을 준비할 때 풀기도 안 빼서 뾰족하고 새하얀 새붓보다는 쓰던 붓을 가져다 놓으면 좀 더 리얼리티가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 서실에 있는 오래된 붓이라도 기증하고 싶다.)

사용감 있는 붓은 이런 모양

역모를 계획 중이나 그다지 치밀하지는 않은 원산군이 남긴 시의 원문은 중국 당나라의 선자화상(船子和尙)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게송(偈頌)이다.

연모19화_원산군이 현이에게 준 시와 예전에 쓴 시


千尺絲綸直下垂 천척사륜 직하수
一波纔動萬波隨 일파재동 만파수
夜靜水寒魚不食 야정수한 어불식
滿船空載月明歸 만선공재 월명귀

천 자의 낚싯줄을 곧장 드리우니,
한 물결 움직이자 만 물결 따라 움직인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 고기 물지 않으니,
빈 배 가득 달빛 싣고서 돌아온다.

- 번역참고: '고전시가 속 ‘漁父’ 모티프의 수용사적 고찰', 김승우, 2011


드라마 속에서는 대사 톤에 맞게   부드럽게 번역되었고, 새롭게 현이에게 남긴 시에서는 마지막 구의 '(月明명월)' '나의 (我夢아몽)'으로 바꾸어서 끝까지 역모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내보이는 장치로 사용했다.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 물고기를 낚지 못하였지만 다시  배에 나의 꿈을 싣고 돌아오겠다는 뜻으로  모양이다. 탈옥을  욕망할아버지 한기재와 협력하여 여연의 사병들을 대동하고 다시 한번 역모를 시도하여 왕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실현 시키겠다는 것인데, 그걸  굳이 현이에게 시로 남긴 것인지....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꿈을 끝까지 쫓고 싶다는 형님의 유언 같은 것이었을까? 형님의 마음을   없다. 어쨌든 안타깝지만 마지막회에선 목숨을 부지  수는 없겠지.


원문 시와 드라마에 나온 시에는 다른 글자가 두 개 더 있다. 2구의 '纔재' 가 '自자' 로 되어있고, 3구의 '食식'은 '餌이'로 되어 있다. 대필작가님 혹은 드라마 작가님의 착오였을까?  '纔재'는 '겨우, 조금'의 뜻이라 '작은 물결이 겨우 일었을 뿐인데 수 많은 물결이 따라 생겨난다.'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自자' 라고 한다면 '물결 하나가 저절로 일어나니 수 많은 물결이 따라 생겨난다.' 라고 풀이하면 될 것 같다. 원산군의 대사를 보면 '물결 하나 겨우 일다' 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纔재'가 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餌이'에도 먹는 다는 뜻이 있으니 의미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이 시 형태의 게송은 유명한 내용이라 고려 후기의 문집에서도 발견되고 그 이후 조선시대에서도 여러 문인들이 영감을 얻어 그 운을 빌려서 다른 작품으로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재미있게도 서로 해석하는 내용은 달랐다.


불교에서는 고기 낚는 일을 중생을 교화시키는 일에 비유하고, 물결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것을 번뇌에 비유해서 중생은 이미 잘 살고 있으니 천길 아래 잘 지내고 있는 물고기와 같은 중생들은 애초에 교화 시킬 대상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어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마도 본래 게송을 지은 선자화상의 뜻은 여기에 가까웠을 것 같다.


하지만 후대로 오면서 불교적인 색채를 점차 지워나가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과 은자의 삶을 노래하는 시로 더 사랑을 받았다. 달빛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며 낚시하다가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도 근심하지 않는 은자의 삶이 더 연상 되었던 듯 하다.


천길 아래 물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의 시선에서 볼지, 달빛 아래에서 낚시하는 어부의 시선으로 볼지에 따라서도 시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질 것 같다. 좋은 글은 이렇게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남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감성을 선물하나보다.


내일이면 '연모'가 끝나지만, 그래도 '옷소매 붉은 끝동'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준호 화이팅


www.munij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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