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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글나눔 Dec 01. 2022

우당탕탕 핸드폰 구입기

feat.격사홀명(擊蛇笏銘)

느닷없이 최신 핸드폰이 생겼다

그것도 온라인 주문 시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 바로 그 아이폰14 프로 맥스가.


원래 쓰던 핸드폰은 아이폰xs 맥스 였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활자중독자라 늘 큰 화면을 써 왔는데 아이폰11에서 13이 출시되는 지난 몇 년동안 아이폰 프로 라인에만 큰 화면이 적용되어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원래 쓰고 있던 기기도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비싸고 기능 많은 프로 라인이 아닌 일반 모델 라인에 큰 화면이 적용되면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올해 초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렸다. 일반 모델로 큰 화면이 적용 된 아이폰14 플러스가 출시 된다고. 언젠가 이걸 개발해 줄 줄 알았어, 믿고 있었다고 애플!


드디어 핸드폰을 교체할 때가 왔구나 싶어 미래의 내 핸드폰은 성능이 어떠한가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 아이폰14에 새로 적용 된 다이나믹 아일랜드-전면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디자인 저해요소이기도 한 노치 부분을 디자인으로 승부하여 요리조리 움직이게 만들어 역시 애플! 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 다이나믹 아일랜드-아이폰14 플러스에는 적용이 안되고 오직 프로 라인에만 적용이 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 기능이 없다면 이전에 나온 모델인 아이폰13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사실 다이나믹 아일랜드는 화면 전환에 화려함을 더할 뿐 기능적으로 뛰어난 장점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애플의 이런 쓸데없는 멋짐이 바로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아니던가.-


14 프로 맥스인가, 14 플러스인가.


사람 생각은 역시 서로 비슷한지 제품이 출시 된 후 선호도는 압도적으로 프로 맥스에 쏠렸다. 게다가 중국의 생산 공장이 코로나 여파로 제때 출하를 못하는 사정까지 겹쳐 프로 맥스는 온라인 주문 후 무려 한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귀한 몸이 되어버렸다. 간혹 오프라인 매장에 한두 개 들어오는 물량을 바로 살 수는 없을까 싶은 헛된 기대로 아침마다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며칠을 허송세월했다.-이걸 위해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리는 사람도 있던데 한갓 사람의 클릭 따위가 어떻게 프로그램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한 달을 기다리기는 싫고-딱히 이유는 없다. 한갖 기계따위를 한 달이나 기다려 갖고 싶지는 않은 알량한 인간의 자존심인가.- 바로 살 수도 없어서 이도저도 귀찮다 싶은 마음이 생길 때쯤 언제나 명쾌하게 나를 인도해주는 남편이 대신 결정을 내려주었다.


"14 플러스를 사거라!"


그렇지. 초심을 되찾자. 게다가 14 플러스는 물량이 남아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아무 때나 살 수 있으니 마음을 굳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나들이 겸 명동 애플 매장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예쁜 길을 따라 기분 좋게 애플 매장에 도착했다. 무슨 색을 살까 둘러보던 중 주문을 도와주는 직원이 어렵사리 잔잔해진 마음에 또 돌을 던졌다.


“고객님! 오늘 마침 프로 맥스가 딱 두 대 들어왔는데 한 개는 벌써 나가고 딱 한 개 남아있어요. 이 물량 확인하고 이거 사러 오신 건 줄 알았는데, 일단 이거 빠지기 전에 잡아 놓을까요?”

“네?! 아... 네... 일단 잡아주세요.”


애초에 살까 고민했던 모델은 프로 맥스 보라색-처음 출시 된 색이다.-, 용량은 512GB-좋아진 성능만큼 미디어 용량도 커질테니 넉넉한게 좋다.-였는데, 남아 있는 모델은 검은색, 256GB라고 한다. 프로 맥스라는거 말고는 기존에 고려했던 사항이 하나도 안 맞는다! 그래도 너무 고민스러웠다. 화사하고 가볍지만 인기가 없어 물량이 남아도는 14 플러스와 칙칙한 검정색이지만 기능은 훌륭하고 비싸고 무겁지만 구하기 어려운 프로 맥스를 양 손에 들고 입력값은 많은데 판단을 내릴 기준이 없어서 오류가 난 AI 마냥 버벅이고 있을 때 역시나 남편이 한 마디를 해 준다.


“프로 맥스를 사거라.”


남편의 판단 기준은 확실하다. 지금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그렇게 느닷없이 최신형 핸드폰이 수중에 들어왔다.

집에 오는 도중에도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한다. 애플은 한 달 내에 무조건 반품을 받아준다고 했으니 써보다가 바꿀까?-귀찮아서라도 안 바꾸리란 걸 안다.- 칙칙한 검정색-아니다. 스페이스 블랙이다.-을 볼 때마다 화가 나는 건 아닐까?-어차피 케이스 씌우니 예전 핸드폰도 가끔 무슨 색이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나한테 이런 고사양이 과연 필요할까? - 지금 당장 어떤 기가막힌 용도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글이 하나 있었다. 송나라 석개(石介, 1005~1045)가 지은 <격사홀명(擊蛇笏銘)>인데 어떤 사람이 관리의 명패와 같은 홀(笏)로 뱀을 때려잡은 이야기이다.

명나라 시대의 상아로 만든 홀〈明 象牙笏〉,國立故宮博物院藏

어떤 고을에 요사한 뱀이 한 마리 나타났는데 고을 사람들이 뭔가 신령스러운 뱀인가 싶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가 인사하고 기도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요사한 뱀이 있었는데 지극히 괴이하였다. [有蛇妖, 極怪異.]”라고만 나오니 대체 어떤 뱀이었는지 궁금해도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용이라고 여겼다. [人以爲龍]”라고 하니 발이나 뿔, 수염 비슷한 것이라도 달렸던걸까? 아니면 뭔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 끄덕거리기라도 했던걸까? 어쨌든 사람들이 날마다 찾아갔다고 하니 도망가지도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그러던 어느날 그 지역의 관리로 부임한 공공(孔公)이란 사람이 이 사태를 보고 대중을 미혹시키는 뱀이라하여 들고 있던 홀로 냅다 때려 죽였는데,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아무런 흉악한 일도 생기지 않자 그제야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생업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벼슬아치면 누구나 들고 있는 '홀'이지만 누구의 손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크게 쓰일 수도 있듯이 조정에 가서도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 백성을 위해 애써달라는 교훈도 함께 담겨있다.


公以笏爲任, 笏得公而用.
공공은 이 홀로써 책임을 수행하고, 홀은 공공을 만나 제대로 쓰이게 된 것이다.


사람과 물건이 서로에게 좋은 쓰임이 되어준다면 각각 따로 있을 때 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법. 나에게 들어온 이 핸드폰이 제대로 쓰여 큰 일을 하는 도구가 되는건 나에게 달려있다. 이제부터 열심히 배우고 자주 써서 돈 값을 하게 만들어보자.

아이폰14 프로 맥스로 멋진 사진을 찍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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