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君臣臣, 父父子子
수업 발표 준비에 과제에 시험이 연이어 있긴 했지만 잠을 줄여야 할 정도로 바쁘진 않았다. 그저 할 일이 늘 있기에 마음으로만 바늘 들어갈 틈도 없는 것 마냥 괜스레 바쁜 주말이었다. 시간 관리를 못하고 공연히 바쁜 와이프 때문에 혼자 놀기가 점점 익숙해지는 남편에게 부채감이 쌓여가던 터에 또 혼자 영화를 보고 오겠다며 터덜터덜 집을 나서는 남편을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보려는 영화가 군부 쿠데타를 그린 영화라니 집을 나서기도 전에 마음이 답답하다.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이미 역사가 스포일러인 데다가 아직도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울울해져 즐겨 찾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울울함이 혼자 영화를 보고 올 남편을 보면 더 커질 것 같아 일단 함께 집을 나섰다.
영화업계가 불경기라 조조 영화를 볼 때면 자리가 많이 차는 적이 없었는데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가 평론가만의 의견은 아니었는지 사람이 꽤 많았다. 게다가 울울할 것이라는 걱정과는 달리 영화는 스토리가 긴박하게 짜여있었고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안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그날 저녁의 이야기가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섞인 채 숨 가쁘게 달려갔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안내상 배우가 천연덕스럽게 군부 쿠데타의 장성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과연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을지도 궁금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 본격적인 쿠데타가 시작되었을 때 정해인 배우가 나왔다. 특전사령관 곁을 끝까지 지키다 친한 형으로 지내던 상대편에게 사살당하는 역할이었는데, 그가 죽는 장면부터 눈물이 왈칵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배우였다면 좀 덜했으려나. 해사한 얼굴로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선 결의가 슬펐다.
지켜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을 보면서 예전에 들으며 허투루 넘겼던 논어 구절이 생각났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입니다.”
<논어 안연>
한글로 쓰면 길어서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원문은 “君君臣臣父父子子”이다.
초등학생도 보면 알 것 같은 한자로 쓰인 이 부분을 처음 배울 때 ‘공자도 참 싱거우시네. 임금 앞에서 기껏 하는 대답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신담.’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말은 나도 하겠다.’ 싶은 불경한 마음도 조금 있었고.
그런데 저 말씀을 하신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당연한 말을 지키지 못해서 사회는 늘 시끄러웠다. 당연하다고 해서 쉬운 일이 아니고, 쉬워 보여도 그 가치가 작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학자 정자(程子)도 공자의 말에 대해 “성인은 말이 지극히 천근(淺近) 하나 위아래로 모두 통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화를 보면서 목숨을 잃더라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이들의 강개함에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그런 진심이 통했던 건지 영화는 이 불경기에도 순항하여 천만을 넘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영화가 흥행한 만큼 사람들도 자기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되짚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물론 나 자신도 학생으로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아내로서 가정을 잘 돌보는 본분을 잘 지키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