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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04. 2024

내가 그럴 줄 알았으면 오늘 레고랜드에 안 갔지

  "아빠, 셋 중에서 하나 골라. 공지천, 레고랜드, 담작은도서관."


  늘 육아 일상에서 마의 구간인 일요일 점심을 먹고 난 시간이었다.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저녁 먹기 전까지 우리 가족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내게 딸내미가 고맙게도 세 가시 선택지를 주었다. 늘 주관식보다는 객관식이 쉽다. 공지천 산책을 하기엔 공지천이 아직 황량할 것 같았고, 담작은도서관은 오늘이 아니라도 갈 수 있는 날이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레고랜드 연간이용권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빠랑 레고랜드 갈까?"


  "좋아!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간식도 먹자."


  오랜만에 레고랜드에 간다고 들뜬 우리 부녀는 부리나케 준비를 하고 레고랜드로 이동했다. 평소와 달리 주차장이 한산했다. 내가 선호하는 주차구역 맨 끝부분에 주차를 하고 정문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해솔이와 같은 색 블록만 밟기 놀이도 하고, 기차놀이도 하고, 캥거루처럼 콩콩 뛰기도 하면서. 오늘 날씨도 따뜻한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운이 억수로 좋은 우리 부녀가 눈치게임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자축하며 레고랜드에 들어섰다.


  해솔이 입장하자마자 브릭파티(이하 회전목마)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오랜만에 찾은 레고랜드를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싶어 해솔이랑 재미있게 탔던 놀이기구들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해솔아, 저번에 아빠랑 소방차 타고 불 껐던 거 생각나지? 거기 먼저 갔다가 비행기도 타고 회전목마로 가자."


  "응 알겠어."


  아이들 달래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되었을까. 늘 해솔이와 타곤 했던, 타러 가면 한참은 대기해야 탈 수 있었던 놀이기구들에 오늘따라 줄을 선 사람들이 없었다. 2인승 보트를 타고 한 바퀴를 도는 기구였는데, 물이 있어야 할 곳에 물이 다 빠져 있었다. 


'아하, 겨울이라 물이 얼까 봐 물을 빼두었구나!'


  오늘은 물과 관련된 기구들은 이용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D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는 손님을 받고 있었지만, 해솔이와 지난번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시작과 동시에 울음바다가 되어 나왔던 기억이 나 휙 지나쳤다. 첫 번째 목적지인 '소방차 타고 불 끄기'에 도착했는데, 소방차들은 가동을 멈추고 인공 눈으로 가득한 '눈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아, 맞다! 소방차 타고 불 끄기도 물을 이용했었지. 비행기나 타러 가야겠다.'


  아쉬워하는 해솔이의 손을 붙잡고 '비행기 타기' 놀이기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오늘은 운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카드가 붙어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싶었다. 회전목마를 타고 싶다고 아빠에게 졸랐는데, 아빠가 살살 꼬드겨서 찾은 놀이기구마다 바람을 맞은 해솔이는 심술이 잔뜩 나서 성난 복어처럼 볼에 가득 바람을 불어넣고 툴툴거렸다. 아차 싶어 발걸음을 재촉해 회전목마 쪽을 향했는데 가는 곳마다 '오늘은 운영하지 않는다.', '따뜻한 봄에 만나다.'라는 메시지만 가득했다. 불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회전목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회전목마도 마찬가지로 '오늘은 운영하지 않습니다.'였다. 


 





  "아빠, 나 그냥 놀이터에서 놀래."


  "해솔아 미안해. 아빠도 많이 속상하네. 놀이터에서 좀 놀다 관람차 타러 가자."


   잔뜩 실망할 법도 한데 해솔이는 회전목마 건너편에 있는 놀이터에서 한참을 즐겁게 놀았다. 신나게 놀고, 간식으로 가져간 과자도 먹고, 씩씩하게 관람차도 탔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레고 샵에 가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탐스러운 레고들을 구경하며 눈독만 들이다가 두 시간 전 신나는 마음으로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나갔다. 그렇게 오늘 우리 부녀의 레고랜드 나들이는 끝이 났다. 나오는 길에 안내판을 보니 겨울 시즌 레고랜드 운영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었다.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분명 오늘의 사태가 미리 예견되어 있었을 것.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 크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활동일수록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오늘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다. 레고랜드가 집이랑 가까웠기에, 그리고 해솔이와 단둘이 찾았기에, 그리고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연간 이용권을 사용했으니 망정이지…. 먼 거리에 온 가족을 데리고 비싼 돈을 들여 찾은 관광지였다면 평생을 사골처럼 우려먹을만한 망한 나들이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였으니 다행이다.


  "오늘 일찍 왔네? 해솔이 아빠랑 레고랜드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엄마, 오늘 레고랜드 블록 친구들이 다 쉬러 갔대. 오늘 회전목마도 못 타고 관람차만 탔어."


  "내가 그럴 줄 알았으면 오늘 레고랜드에 안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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