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갖춰야 하는 제1조건이 뛰어난 미각인데, 남편이 나에게 '미뢰가 있냐'고 폭언(?)을 했을 정도로 혓바닥의 성능이 썩 좋지 않은 게 추측컨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그래도 그게 뭐 그리 큰 흠결은 아니었다. 세상이 워낙 좋아 각종 레토르트며 패스트푸드로 어떻게든 배만 채우며 살 수 있으니 미뢰가 좀 모자란다고 해도 굶어죽을 일은 없었으니까.
위기는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닥쳐왔다.
정확히는, 내가 우리집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되고 나서.
학교 다닐 때, 마트라고는 엄마 따라 짐꾼 노릇하러 가거나 저녁거리 심부름을 다녀오는 게 전부였던 시절. 그땐 먹고 싶은 과자나 음료수만 집어담다가 등짝에 불이 나곤 했다. 이후 너절하던 자취생일 적에는 한푼이라도 아끼려 고추참치나 대용량 냉동식품이나 몇 개 골라올 때 빼고는 마트라곤 갈 일이 없었더랬다.
신선식품이라곤 내 돈 주고 사 본 적이 손에 꼽는 만큼, 신혼 초에도 제 버릇 개 못 주고 오만가지 냉동으로 밥상을 차렸었다. 그 탓에 건강한 집밥으로 단련되어 온 오빠의 위장이 자주 탈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먹은 것들을 변기에게 고스란히 헌납하니 정화조만 배불리는 꼴이었다.
그렇다고 장 보는 것부터 밥상 차리는 것까지 오빠에게 맡기자니 속에서 천불이 부글부글 끓었다. 참기름 쪼록, 소금 톡톡하면 될 음식도 하나하나 계량수저를 거치다 보니 밥 한 끼 얻어먹으려면 한두 시간을 인내해야 했다.
"오빠, 이제 배추 넣어도 돼."
"아냐. 레시피에 5분 끓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 30초 남았어."
"아, 그냥 물 끓으면 넣어도 된다고!!!"
내 잔소리에도 꿋꿋하고 우직하게 오빠는 레시피에 충심을 다했다. 정철도 사미인곡을 집필할 때 이것보단 선조한테 덜 충성했을 것이다. 에버랜드의 티 익스프레스 대기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기분이었지만 정작 그 맛이 롤러코스터만큼 짜릿하고 환상적이진 않았기 때문에(오빠 미안) 결국 암묵적으로 요리는 나, 뒷정리는 오빠의 몫이 되었다.
연약하디 연약한 그의 위장이 받아들이려면 그래도 집밥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쉬운 반찬부터 조금씩 도전하던 중에 코로나 사태로 강제 자가격리가 이어지며 괄목상대할 정도로 요리 실력이 늘었다. 팬데믹이 한 시골 촌동네의 가정집에 불러온 뜻밖의 순기능이라니.
위장이 가타부타 말 많고 까다로워서 그렇지, 오빠는 그다지 식탐이 없고 음식 불평을 잘 안 한다. 성에 썩 안 차도 얻어먹는 것에 감사하며 참고 먹는 것 같다. 무슨 음식을 해 줘도 반찬 정말 잘하네, 맛있다, 정도의 무난한 반응을 보이며 먹는 편이다.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계란국을 끓여봤는데 맛이 맹맹한 거다. 레시피에서 시킨 대로 물 끓여 계란 풀고 소금 쳤는데? 싱거운 느낌과는 다르게 알 수 없는 맹숭맹숭함에 가스레인지 앞에서 돌부처처럼 서 있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찬장 깊은 곳에서 미원을 꺼냈다.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마법의 가루라고 찬양하길래 마트에서 집어온 거였다. 고민하다가 냅다 한 티스푼 정도를 풀어넣었다. 오빠가 맛이 이상하다고 하면 이실직고해야지.
그렇게 우리집 식탁 위로 처음으로 폴폴 김을 내며 계란국이 등장했다. 오빠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요리조리 계란국을 살폈다.
"계란국 끓였네?"
"응. 근데 맛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
머쓱해하는 나를 두고 오빠는 계란국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러더니 눈을 땡그랗게 떴다. 또 한 숟가락을 더 떠먹었다. 국그릇에서 고개를 휙 들어올린 오빠의 얼굴에는 감동이 서려있었다.
"미쳤다. 진짜 맛있는데?"
"어?"
"어떻게 이렇게 잘 끓였어? 와, 팔아도 되겠다."
군인 시절 도시락을 싸들고 갔을 때도 못 봤을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이며 오빠는 국그릇을 싹싹 긁어먹었다. 더 없냐며 아쉬워하던 오빠는 빈 그릇을 들고 외쳤다.
"음식에서 감칠맛이 나!!!"
당연하지. 미원 넣었는데. 나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그 말을 계란국과 함께 삼켜버렸다.
MSG의 엄청난 힘을 알게 된 후 절로 자신감을 얻었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하루아침에 우리집 요리왕 비룡이 될 수 있었다. 내친김에 다음날은 시금치를 무치며 거기다가도 미원을 뿌려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오빠는 그날도 시금치 한 점을 집어먹더니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리가 언제 이렇게 늘었지?"
그후로 오빠는 온갖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밥 먹는 게 즐거울 정도라느니, 요리는 재능이라느니, 급기야 시어머니 시금치 무침보다 맛있다(!!!)는 평을 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께서는 미원을 안 쓰시니까. 그러니까 나는 MSG 한 스푼으로 40년 집밥 짬밥 시어머니의 손맛마저 거뜬히 넘어선 것이다.
오빠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고, 나는 매일 미원 덕택에 감칠맛의 제왕 반찬킹 프로 주부로 거듭나고 있다. 어제는 밑반찬으로 두고두고 먹으려고 왕창 무쳐두었던 미원 범벅 시금치와 오이고추된장박이를 오빠가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다시 장을 봐야 했다. 덕분에 요즘은 정화조도 굶은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