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전설 한 번만...

2023년 월드컵 결승전을 지켜보며

저는 축구에는 1도 관심이 없어요. 정말이에요. 스스로를 '막대기 인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움직임이 뻣뻣한지라 운동을 잘 못하거든요. 뭐, 그럭저럭 할 줄 아는 운동이 있기는 해요. '검도'. 아세요? 죽도라고 하는 대나무를 길게 잘라 모아서 만든 칼이 있거든요. 그걸 들고 1 대 1로 대결하는 운동이에요. 제가 로봇처럼 움직이는 편이라 부드러운 움직임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검도는 할만하더라고요.


아 말하다가 생각난 건데요. 제가 1 대 1로 하는 경기는 그럭저럭 하는데 여럿이서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을 잘 못해요. 오죽하면 말이지요. 큰 아이가 유치원 때였어요. 일본의 칠월 칠석에는 '사사(笹)'라고 부르는 얄상한 대나무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걸어 놓거든요. 얇고 긴 직사각형의 종이인데요. 그 종이는 '탄자끄(短冊)'라고 부른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뭘 하나 보러 가는 날이 있어요. 참관일이요. 그날이 딱 칠월 칠석을 앞둔 날이라 다 같이 탄자끄를 받아 소원을 적었거든요. 제가 거기 쓴 소원이 바로.


'구기 종목 좀 잘하게 해 주세요.'


이거였어요.


네? 그냥 공 잘 보고 규칙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나 참. 저도 그런 줄 알았죠.


제가 어릴 때 참 천방지축이었어요. 맨날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숨바꼭질이다 술래잡기다 온갖 놀이를 다 하고 다녔거든요. 작은 아이부터 어른처럼 느껴지는 커다란 언니 오빠들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이 함께 했어요. 가끔 누군가 공을 가져오면 축구 같은 놀이를 해요. 그럼 팀을 나누잖아요? 아니 그런데 저는 왜 같은 팀조차 구분이 안 되는 건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뛰느라 얼굴은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숨을 씩씩거리는데 공은 발 근처도 안 오더란 말입니다. 뛰면서 어딜 보냐고요? 아 물론 공이죠. 공을 차야 하는데 공을 보지 어딜 보라는 겁니까?


게다가 이런 일도 있었어요. 결혼을 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의 일이죠. 그때 우리 집엔 어린아이 둘이 있었어요. 어느 날은 다 같이 나가서 공놀이를 해보자며 백엔샵에서 손에 들어오는 작은 공을 사서 나갔어요. 넙데데한 접시 같은 거 있죠? 그 외 날리는 거. 프리스비라고 하나요? 그것도 같이요. 일본 드라마 보신 적 있으신가요? 거기 보면요. 부모와 아이가 캐치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아마 남편도 그걸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린 신나게 공원으로 갔습니다. 주변에 공놀이, 테니스 이런 거 하는 가족들이 엄청나더라고요.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가 봐요.


자리를 잡고 열심히 공을 던지고 받았어요. 접시도 날려보고요. 아. 저는 그때 더 어린 둘째를 쫓아다녔고요. 공 던지기는 남편과 첫째가했어요. 저희 집 첫째는 남자아이인데 스포츠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건 좋아하지만 딱히 축구나 야구 같은, 말하고 보니 다 공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네요? 그런 운동을 일부러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금세 질려했어요. 사실 잘 잡지도 못하고 던지는 것도 힘이 약해서 공이 멀리 나가질 않으니 다시 잡으러 가야 하고. 내심 힘들었나 봐요. 덕분에 나와 남편 둘이 공을 주고받기 시작했죠.


남편이 공을 던졌습니다. 저는 공을 잘 보고 있었어요. '어느 방향으로 오던 상관없이 받아주리라' 다짐했어요. 머릿속에서는 이미 시뮬레이션이 끝났더랬죠. 공보다 빠르게 몸을 날려 한 손으로 탁 받아내는 저를요. 아 그런데 이런. 남편이 손을 들어 내 치는 장면을 보았는데 공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공이 제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줄 알았어요.


어디서 풉, 같은 짧은 숨을 뿜어내는 소리가 들렸어요. 남편이었죠.


그 소리를 듣고 일단은 폴짝 뛰어서 받는 시늉을 해보았어요. 팔을 최대한 위로 높이 쳐들고 다리는 뻗댔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웃겨서 웃음이 튀어나와 떨어지자마자 몸을 반으로 접고 배를 꽉 잡았죠. 그거 아세요? 웃기면 몸에 힘이 쫙 빠져요. 땅으로 떨어져 내린 다리에 힘이 없어서 무릎이 저절로 접히더라고요.


"받았어?"


웃느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빈 손을 들어 올려 보여줬죠. 고개를 드니 아 놔. 제 발 옆쪽으로 떨어져 있네요.


'뭐야. 날 스쳐 지나가긴 한 거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동체시력 좀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살짝 했던 것 같아요. 입가를 씰룩대며 웃는 눈을 하고서는 남편이 왔어요. 뭐라고 하기 전에 제가 벌떡 일어나서 이야기했죠.


"이번엔 내가 던진다."


검도를 할 때 쥐고 있는 죽도를 쥐어짜듯이 잡으라고 하거든요. 상대방을 죽도로 때릴 때에는 끊듯이 힘을 꽉 주고 모아진 힘을 죽도 끝으로 보내서 쳐요. 덕분에 손아귀 힘은 자신 있거든요. 저는 공을 쥔 손에 힘을 잔뜩 줬어요. 팔을 뒤로 멀리 보내고 45도 각도를 의식하며 뒤에서부터 몇 발 달리면서 공을 던졌어요. 그 외 소프트볼 할 때처럼요. 제 자리에 서서 공을 던지는 게 아니고 도움닫기 하든 몇 발 달려와서 던지는 식으로요. 힘을 어디로 준건지 한번 던지고 어깨가 빠질 것 같더라고요. 남편은 우습다는 듯이 탁 소리를 내며 받아냈어요.


"간다."


'아 말 안 해도 되는데 내가 아까 못 받았다고 이러지 응?' 저는 집중할 때 저절로 입에 힘이 들어가요. 그 순간에도 입을 꽉 물고 두 눈에 힘을 줘 집중했어요. 공이 남편의 손을 떠나고 어쨌든 제 쪽으로 오는 게 보이는 것 같았어요. 저는 멋지게 두 손을 집게처럼 벌려 받으려고 앞으로 내밀었는데. 몸이 왜 팔을 따라가는지 같이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엉거주춤 앞으로 비틀거렸어요. 공은 또 제 발 앞쪽으로 떨어져 내렸고 요.


몇 번을 해도 폼은 늘 엉성하고 공은 잘 안 받아지더라고요. 한번 받았던가? 좋아서 소리를 꽥꽥 질러댔어요. 이러니 다른 사람이랑 공 놀이를 하겠냐고요.


축구도 공 놀이니 관심은 없지만 이게 또 주변에서 열성적으로 보니 저절로 보게 되네요. 이번 2023년 월드컵도 덕분에 밤잠도 줄여가며 찾아봤어요. 아. 참 그렇다고 다 본건 아니고. 애국심에 한국 축구 경기 좀 보고요. 외국에 살아서 그런지 '대한민국' 관련된 건 참 자주 울컥하고 그러거든요. 예의상 남편의 나라 일본 축구 경기도 봤어요. 그러다 보니 이게 또 재미있네요? 8강도 좀 보고 4강도 보고 하다 보니 결승까지 와 버린 거죠. 경기를 한 3시간쯤 남긴 시간이었을 거예요. 웃고 떠드는 아이들로 난장판 거실 가운데에서 자라는 말을 하고 또 하며 집 정리를 하고 있었어요. 웬일로 일 끝나면 주짓수 하러 도장에 가는 남편이 집에 있는가 싶다가 축구 결승전 생각이 났죠.


"오늘 축구 봐?"


"어"


"누가 이길 것 같아?"


"아르헨티나가 이기면 좋겠어. 이야기가 아름답게 끝나잖아."


"그게 뭔 소리야"


"메시가 있잖아. 신의 아들(神の子). 월드컵 우승하고 신(神)이 되는 이야기 꽤나 멋지지 않아?"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어요. 게다가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의 전설(伝説)이라지 뭐예요.. 전 그것도 몰랐지만 사돈이 땅을 산 것도 아닌데 부러워서 배가 아프더라고요! 아무튼, 남 잘 되는 거 못 보는 성격은 어디 안 가나 봐요.


"캬아.. 나도 전설이 되고 싶었다."


제가 생각해도 좀 우습고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벌게지는 통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그랬더니 그 말을 듣고는 남편이 한마디 날렸습니다.


"이미 나한테는 전설이야."


듣자마자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진지하게 만세를 외치며 기뻐할 수가 있어야지요. 갑자기 집이 뜨거워지기라도 했는지 얼굴은 화끈거리고 말이에요. 그래도 이게 어디예요. 만인에게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전설이라니. 저기 날아다니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먼지만큼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성공' 아니겠어요? 저는 헤 벌어지는 입을 숨기지 못하고 이렇게 말해줬어요.


"고오맙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대단한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거군요. 네? 제가 무슨 생각하냐고요? 앞으로도 나답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요. 또 알아요?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저를 '전설'로 생각해줄지 말이에요.




'나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