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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l 04. 2023

쌍무지개


비가 내린다. 우산은 짐스럽다며 야무지게 우비로 몸을 감싸고 뒤돌아 웃던 은화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는 

쌍무지개가 곱게 피어오르던 날에 자취를 감추었다. 무지개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러 간다고 했다. 


"같이 가자."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을 하고 반짝이는 눈을 내 앞에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기대감에 들뜬 볼이 발그레했다. 이뻤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곳을 향해 가자는 말에 선뜻 그러자고 하지 못했다. 망설였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있고. 사는 집도 있고. 은화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저렇게 모든 걸 놓고 떠날 수가 있는 것인지. 하긴. 은화는 옛날부터 그랬다.


"오빠! 우리 전국일주 하러 가자. 지금 당장."


"오빠! 오늘 밤에 유성우 떨어진대! 한 시간에 50개나 볼 수 있댔어. 강원도가 잘 보인다더라. 가자."


"캠프나 하러 갈까 우리? 내가 필요한 거 다 챙겨 왔어."


늘 이런 식이 었다. 은화는 머리에 떠오르는 걸 바로 해 버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만남도 갑작스러웠다. 그때 난 회사일이 너무 힘들었다. 뭐가 문제인지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는 팀원들. 회사일에 시달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밤기차를 타고 일출을 보러 정동진으로 향했다. 휴가도 내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일출을 보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지갑만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여름이라 아무 생각 없이 반팔차림으로 나간 건 미친 짓이었다. 해뜨기 전 바다는 추웠다. 주위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건 나밖에 없었다. 몸을 웅크리고 바닷바람을 견디느라 뜨는 해를 찾아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발만 보고 있었다.


"이거라도 걸쳐요."


방한용 귀마개를 하고 병아리같이 노란 목도리를 둘둘만 여자가 담요를 덮어 주었다.


"여름이라고 반팔로 오면 안돼요. 바닷바람 얕보지 마요. 얼마나 추운데요. 그러다 몸 상할라."


그녀는 자신을 은화라고 했다. 어쩌다 함께 일출을 보고 아침도 먹었다.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사람을 그냥 보내기가 뭐 해 억지로 잡은 건 나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린 같은 서울 사람이었다. 서로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였지만 서울땅을 밟고 사는 사람이라는 동질감이 생기니 왠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 아프다고 하루 휴가를 냈다. 식당가에서 전화하느라 왁자지껄한 소리가 그대로 들렸을 텐데 인사과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혼자 여행 왔다는 은화와 죽이 맞아 하루종일 붙어 다녔다. 어묵을 먹으러 갔다가 커플 소리를 듣고는 서로 얼굴을 붉혔지만 싫지 않았다.


여행에서 다녀와서도 우린 자주 연락을 했다. 만나기도 자주 만났다. 데이트라기보다 모험을 위한 동료 같은 느낌 었지만.


"조심해."


같이 가자는 말 대신 조심하란 말을 건넸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장마가 끝나면 돌아오겠다고 했다. 잠깐의 이별이라고. 편지를 쓰겠다고 공들여 골랐다는 편지지를 자랑스레 흔들어 보였다. 작고 귀여운 빨간 금붕어가 그려진 편지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그려진 편지지,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는 것도 있었다.  2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어느 것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새 지붕이 뚫릴 것 같은 비가 내렸다. 뉴스에서 때 이른 장마라며 비로 인한 피해에 대비하라고 난리다. 올해는 폭우가 자주 쏟아질 예정이란다. 해가 뜨자 뜨끈함에 비가 말라버렸는지 보슬비처럼 기세가 약해졌다. 언제나처럼 회사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머리 위로 쌍무지개가 떴다. 은화는 무지개 끝에 있는 것을 확인했을까? 어디까지 간 걸까. 장마철만 되면 그리움 탓인지 기운이 나질 않는다. 원래도 움직임이 느렸지만 물속에라도 잠긴 듯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하는 둥 마는 둥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집으로 왔다. 버릇처럼 들여다보는 우편함에 빨간 금붕어가 그려진 종잇장이 힐끗 보였다. 서둘러 꺼낸 편지봉투에는 받는 이의 주소만 적혀 있었다.


'살려줘.'


급하게 열어본 편지지에는 절박한 단어가 시커멓게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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