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신앙의 다리를 놓다
『신학대전』은 거대한 성곽처럼 느껴지는 책입니다.
수천 쪽에 달하는 이 저서 속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 이성으로 신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는 신앙과 이성을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두 날개로 보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성은 공허하고, 이성이 없는 믿음은 맹목적이다.”
그 말속에는 인간 사유의 절묘한 균형이 깃들어 있습니다.
13세기 유럽은 신의 질서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성의 빛이 서서히 깨어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중심에 있던 아퀴나스는 이런 시대의 문턱에서 하나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는 신앙이 단순한 교리의 암기가 아니라, 이성의 탐구를 통해 더욱 깊어질 수 있는 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신학대전』을 읽으면 놀라운 것은 그 논리의 치밀함입니다.
그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치 수학의 증명처럼 쌓아 올립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반대의견이 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의 글에는 감정의 과장이 없습니다.
대신, 믿음의 세계를 이성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고요한 확신이 흐릅니다.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이성과 신앙’, ‘논리와 감성’을 서로 다른 세계로 여깁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그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에게 신은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이성을 통해 그 존재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신의 질서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교리의 복종이 아니라, 사유의 참여였습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아퀴나스가 왜 ‘신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철학자’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는 신을 설명하면서 인간을 잊지 않았습니다. 신의 뜻을 논하면서도, 인간의 이해와 언어를 존중했습니다.
『신학대전』은 하늘의 진리를 땅의 언어로 옮기려 한 지적 용기의 기록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이 책은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이든 이성이든, 결국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이성이 없으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 머무릅니다. 아퀴나스는 그 둘이 함께 걸을 때 비로소 인간이 완전해진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이해하려 애쓰는 그 마음이 곧 신앙이며, 의심하는 그 순간이 곧 사유의 시작이다.”
『신학대전』은 거대한 신학서이지만, 그 본질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물음은 시대를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려는 이유,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려는 마음의 근원은 결국 같은 곳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박영식 옮김, 바오로딸.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translated by the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Christian Class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