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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븐데이즈 Oct 27. 2021

05. 이제는 시간조율의 시대!

시간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01. 시간관리를 따를까 시간 조율을 선택할까?


높은 습도와 뜨거운 햇빛은 교정을 지나는 학생들의 얼굴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나의 사무실이 있는 북카페‘엘림’의 큰 창밖으로 평소 밝고 쾌활하여 주변을 기분 좋게 하던 여학생이 축 늘어진 걸음으로 지나간다. 여학생을 불러 세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고 가! 날씨 때문인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 무슨 일 있어?” “1학기 성적이 나왔는데 실망이네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를 받고 보니 얼마나 실망인지 몰라요.” “그렇겠다. 누구나 그렇지, 어휴~ 나도 대학교 1학년 1학기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적을 받았었거든 나만 할까?(큰 웃음), 그런데 지난 학기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무엇이 가장 힘들었던 거야?” “음~ 아시는 것처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했잖아요. 아르바이트에 동아리, 학과… 그러다 보니 시간에 쫓기듯 한 학기를 보낸 게 많이 아쉬웠어요.”


그때 그 여학생에게 시간에 지배당하지 말고 시간을 관리하는 자가 되라고 말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이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당시에 유행했던 프랭클린 플래너를 기록하며 신봉자처럼 전파했다. 하다못해 다이어리라도 작성해서 시간관리에 성공하는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 자신도 시간관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플래너나 다이어리 또는 시간관리 어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시간관리 자체에 익숙하지 못한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대학생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 고등학교까지 스스로 시간을 관리해 본 경험이 없다. 학교 시간표조차도 이미 정해진 대로 따라야만 했다. 시간관리는 방학숙제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고 그것마저도 제대로 실행한 사람이 없다. 시간에 피동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이 되면서 가장 먼저 도전해 오는 것은 시간표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인기 강의는 초를 다퉈야만 수강할 수 있을 정도니 수강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거기에 맞춰 시간표를 작성해야 하는 것부터 치열한 경쟁이다. 


시간관리 vs 시간조율


‘관리’(管理;Management)라는 말은 그 단어 자체가 주는 경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지하고 개량하다. 맡아 처리하고 관활하다. 통제하고 지휘 감독하다 등 다수의 뜻으로 해석되는 이 말은 조절(Control)이라는 말과 그 맥을 같이한다. 특히 경영과 연관되어 관리의 의미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관리에는 프로세스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를 P․D․C․A․P Process라고 할 수 있다. 조직 경영을 위한 계획을 명확하게 세우는 계획단계(Plan)에서 그 계획을 실행하고 활동을 추진하는 것은 실행단계(Do), 실행과 활동의 결과를 점검하고 문제점 등을 점검하여 새로운 대안을 도출하는 점검단계(Check), 결과에 따른 개선․처리의 행동과 대안을 행하는 액션 단계(Action)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관리의     P․D․C․A․P Process라고 한다. 


성공을 말하는 자기 계발서의 저자들을 보라. 이구동성으로 시간관리를 주장한다. 맞다! 관리는 대단히 중요하고 관리를 통해 성공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한걸음 더 전진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많은 독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그리고 그대로 따르면 나도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렇지만 어떤가? 또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채, ‘그럼 그렇지 뭐!’ ‘그냥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닌가?’이런 상태에 빠진다. 나는 이것을 시간관리의 늪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관리라는 늪에 빠진 사람의 특징은 연말연시에 플래너나 다이어리를 매번 구입하고 도전적으로 해보겠다는 결심을 갖지만 뒤로 갈수록 플래너는 공백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라는 감정을 반복적으로 갖게 된다.


시간관리의 핵심은 단 하나, ‘성공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성공을 다양하게 말할 수 있지만 성공의 이면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목표를 세우고 직원은 하위목표를 세워 기한 내에 달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또 다른 무엇인가에 도전하기 위해서 철저한 시간관리가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다. 결국 시간관리는 성공이란 미명 아래 자기 착취의 함정에 봉착하게 될 뿐이다.


빅터 프랭클은 “본능은 유전자를 통해 전달되고 가치는 전통을 통해 전달되지만 의미는 특이하게도 개인적인 발견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누구나 추구하는 기본적인 행복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순간순간 의미를 발견할 때 행복의 길을 가게 된다. 


우리나라 중ㆍ고등학교 과정 6년은 인권 학대에 적응하도록 가르치는 시기다. 교육은 학생들의 고유한 개성ㆍ취향을 끄집어낸다. 주도적 학습, 창의 등의 슬로건을 외치지만 놀랍게도 학교에 들어가면 개성 있는 아이들이 개성 없는 아이들이 되어 나온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학교교육의 종착지는 대학이라는 획일적인 일방통행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철저한 성적 경쟁, 순위 경쟁, 입시경쟁에서 나온다. 대학교에는 엄연한 서열이 존재하고 있으니 종국에는 자기혐오를 부추기는 교육으로 변질되고 말 뿐이다. 


자기혐오는 이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질병이다. 경쟁(입시) 교육이 자기혐오를 양산하는 심각한 상태를 자초했다. 자기혐오는 자기 착취의 변형이다. 노예는 물리적 폭력으로 착취의 대상이지만 자기혐오는 자신의 내면에 노예 감독관이 있어서 생각, 느낌, 감수성, 열망, 무의식까지 착취당한다. 자기 착취는 이처럼 무섭다. 외부로부터의 착취에는 저항이 가능한데 내면의 착취에는 저항이 아니라 죄의식을 가져오게 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MZ세대는 기성세대의 외적 착취에 대해 공정ㆍ정의라는 칼로 맞서 당당하게 싸우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심각한 자기혐오와 자기 착취라는 딜레마에 갇힌 채, 사회에 대한 불만 의식은 가지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지난 중ㆍ고등학교 과정을 지나오는 동안 자신의 가치와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거나 개발하지 못하고 자기혐오 나아가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 대학을 통해 자신을 조율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로 사회에 나아간들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하게 나타날 뿐이다. 


유엔 무역 개발회의(UNCTAD)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그룹 B)으로 변경했다. 선진국이이란 ‘정치ㆍ경제ㆍ문화 등이 발달하여 타국의 원조에 의존함이 없이 자립하는 나라’로 ‘국민의 발달 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국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선진국이란 말에 공감이 가는가? 왜 많은 국민들은 박수는 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2020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이 2,062명, 지난 한 해 전국 체불임금 총액은 1조 5천830억 원, 2021년 최저시급은 8,720원이다.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는데 정말 우리 국민 5,178만 명은 그렇게 공감하고 있을까? 


2021년 자살예방 백서 ‘2020년 대한민국 국민의 연간 자살자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연간 13,081명, 세계 최저 출산율과 노동자 연간 노동시간이 10,927시간…’ 이를 두고 단순히 인구가 5천만이 넘고 국민소득이 3만 달러는 넘었으니 선진국이라고 환호할 수 있을까?


행복이란 무엇인가? ‘내 삶은 소중하다’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사람은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미 성공적으로 태어났다. 이 사실을 믿는 관계의 행위, 이것을 조율이라고 한다.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 시간은 더 이상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조율의 대상이 된다. 행복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조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타인과, 사회 그리고 환경과도 마찬가지다. 이 조율이 과정이 시작될 때 비로소 행복과 만족, 안정감을 누리게 되며 참된 의미를 갖게 된다. 


‘조율’(調律;Tuning)이란 말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강박적 감정을 제공하는 것이 관리적 측면이라면 조율은 여백이 있어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하게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조율의 대상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유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이나 의견 따위를 적절하게 다루어 조화롭게 하고’, ‘악기의 음을 일정한 표준음에 맞도록 고르는 일’을 조율이라고 정의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개인의 연주 실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개인의 연주와 더불어 다른 악기와의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수반되는 행위 곧 ‘조율’의 과정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조율은 언제 해야 하는가?


정해진 시점에 조율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삶에 듣기 불편한 잡음만이 흘러나온다면 과감하게 조율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을 사용하는 악기들은 오랫동안 사용하거나 혹은 방치해 놓았을 때 각 현의 고유한 음정이 온도와 습도 등에 의해 변하게 된다. 그 상태로 연주한다 해도 듣기 불편한 소리만 나온다. 우리는 마치 현악기와 같다. 수시로 튜닝을 해줘야 한다. 


성공이란 미명 아래 경쟁에 내몰리고 급기야 자기혐오를 가진 채 대학에 입학한 당신의 현재가 조율의 시점이다. 직장인이라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지금이 조율의 시점이다. 조율은 현재 시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 시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과정을 조율함으로써 지난 삶을 정리하고 다가올 삶을 대비함으로 삶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란 동기부여를 제공받게 된다.


조율은 스스로 할 수 있지만 효과적인 조율은 코치라는 파트너를 옆에 두어야 한다. 시간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조율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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