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간이 담긴 결과물
생각지 못한 기회에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 안에는 숨 쉬고 있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앳돼 보이는 작은 소년의 얼굴에 오십이 넘은 중년의 얼굴이 투영되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만든다. 감춰졌던 부모님들의 기억을 회상하게 하고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꿈틀 되던 집안의 풍경까지 기억하게 하는 힘, 그것은 사진 한 장이 가진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한 장면을 포착한 걸까? 사진은 그 순간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기간의 시간과 더불어 시간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사진은 시간을 담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요한 잔에 의해 1685년 최초의 실용적인 사진기가 개발된 뒤, 약 142년이 지난 1826년 조제프 니세포어와 루이 다 게레가 공동으로 최초의 인화가 가능한 사진기를 발명하여 촬영에 성공한다. 이렇게 사진기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사진은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 기록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게 되는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휴대폰의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고 휴대성이 간편해지면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진을 찍는다. SNS에 게시할 사진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특히 MZ세대는 사진 열풍의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자신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기 위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다. 그뿐인가? 이러한 활동은 새로운 경제 트렌드로 자리한 지 오래다.
좁은 땅이지만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촬영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풍경을 촬영하려는 사진작가들의 열정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인기 있는 촬영지는 사진작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하고 때때로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원하던 작품을 촬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작품을 촬영하지 못했을지라도 촬영 그 자체로 행복해하는 작가들을 볼 수 있다.
풍경사진 촬영을 취미로 가진 사진작가들의 일상은 언제나 반복적이다.
- 자신이 촬영하고 싶은 장소, 피사체와 부제 선정
- 수시로 기상청에 접속하여 그 지역의 일기예보를 반복적으로 확인
- 당일의 최고온도와 풍속, 구름의 상태 확인
- 다음 날 아침 최저온도와 풍속, 습도와 구름의 상태 확인
- 계절에 따라 비와 눈, 결빙 온도
- 일출시간과 일출 각도를 확인하여 촬영 시간 결정
이와 같이 다양한 부분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조건에 부합하는 촬영일자를 선택한다. 물론 촬영 현장에서의 결과는 자신이 판단한 결과와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도 현장에서는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으며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이런 풍경사진작가 중의 한 명이다. 단순히 한 장의 사진을 담는 행위지만 이 과정에는 수많은 조율의 단계가 존재한다. 사진은 조율의 결과다.
사진, 시간조율의 결과물
풍경사진을 촬영은 세심한 시간조율이 필요한 작업이다. 위에서 말한 것보다 더 세심한 조율 말이다. 아무 때나 무턱대고 카메라만 들고나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산 활동은 시간조율이란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풍경사진 촬영을 위한 몇 가지 조율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과의 조율
사진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한, 풍경사진 촬영은 취미 그 자체다. 취미는 취미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과의 조율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풍경사진 촬영은 그 시간대가 매우 넓다. 풍경사진은 일출 사진, 주경 사진, 일몰 사진 그리고 야경사진까지 활동의 영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의 조율은 불가피하다. 직업의 근무환경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출 사진을 촬영하려면 계절에 따라 일출시간이 변화하기 때문에 출근시간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경우에 따라서 일출이 늦은 동절기에는 일출 사진 촬영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풍경사진 촬영은 반드시 자신과의 조율, 즉 적정한 주간 촬영 횟수라는 협상이 필요하다. ‘주말과 휴일을 포함하여 주 2-3회 촬영을 한다.’든지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촬영을 깨끗이 포기한다.’는 등의 타협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취미가 전도되어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게 되는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건강과도 중요하게 관심을 두어야 한다. 풍경사진은 다양한 환경을 만나게 된다. 스스로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장소에서의 촬영은 금해야 한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욕심을 갖게 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도 더 좋은 작품을 촬영하고 싶다는 과한 욕심에 빠질 수 있다. 취미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사진작가들은 “사진을 촬영할 때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스트레스도 씻어내고 자연 속을 거닐며 아름다운 장면을 촬영하는 일은 최상의 취미생활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 자체를 즐기고 재밌어야 할 일이 과도한 욕심에 마음을 다치는 것은 실패한 취미활동이 된다.
둘째, 타인과의 조율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 전반에 퍼진 워라벨(work-life-balance), 즉 일과 생활이 균형 잡힌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취미 활동도 다양해졌다. 취미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진 게 사실이다. ‘아 ~ 이런 취미생활도 있어?’라고 할 만큼 취미활동은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심지어 취미활동이 경제활동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기도 하고 부업이 주업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취미생활의 다양성과 몰입도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낚시, 오토바이, 게임중독, 자동차 튜닝 그리고 사진 등의 취미는 아내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편의 다섯 가지 취미생활이라고 한다. 경제적 부담도 클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결국 취미 생활로의 풍경사진은 가족들, 특히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취미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배우자와의 적절한 조율이 있어야 상호 간의 심리적 안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셋째, 환경과의 조율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 환경문제로 지구온난화, 해양오염, 수질오염, 대기오염 그리고 산림파괴 등이 지적되고 있다. 환경문제는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을 요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한다. 이 문제는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 그리고 나의 몫이다.
특히 풍경사진 촬영은 자연과 불가분리의 관계다. 뷰파인더를 통해 자연현상의 아름다움을 촬영하는 것은 사진작가가 누리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년간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촬영을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현장이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있다. 국립공원이 입산을 통제하고 휴식년을 제공하는 것은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물리적 폭력이 없으면 자연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사진 취미활동이 대중화되면서 주요 촬영 포인트 주변이 훼손되고 쓰레기들이 방치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자신만 좋은 사진을 촬영하겠다는 과도한 욕망이 인근 원주민들과의 소음으로 인한 다툼, 나무를 잘라내고 새의 둥지를 들어내며 꽃을 꺾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니 심각한 일이 아닌가?
자연과의 조율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자연을 훼손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스스로 조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카메라를 손에서 놓아야 할 것이다.
스티븐 코비가 말하는 ‘원칙중심의 삶’이란 무엇인가? 원칙이 세상을 지배한다. 가치에 따라 나의 행동을 선택하지만 그 결과는 원칙이 지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조율은 바로 이와 같다. 모든 행동에 대한 조율, 그것이 단순한 취미생활일지라도 조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칙의 결과에 참담하게 받아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시간을 찍는 풍경사진작가다. 한 장의 사진이 메모리 카드에 기록될 때마다 시간이 기록되는데 이것을 메타정보라고 한다. 사진 한 장에 담기는 물리적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작가들은 기록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필터를 사용하여 1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진 한 장의 정보와 함께 기록되는 수많은 조율의 관계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사진은 시간조율이 필요했다.
딸의 치과치료로 수지에 다녀오던 날, 딸을 먼저 기차를 태워 집에 보냈다.
이때부터 조율을 위한 감정싸움이 치열했다.
서울 구경 가자는 아내,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는 나.
동대문에 옷 구경하고 싶다는 아내, 일몰사진 찍고 싶은 남편
결국 시간이 문제다. 협상이 이뤄지는데…
안성목장의 창고와 일몰, 2021-09-04 p.m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