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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븐데이즈 Jan 20. 2022

07. 시간을 연주하라!

생각하는 데로 된다.

...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신혼 때부터 살아오던 집을 청소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성장했으니 대청소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거실의 소파를 옮겼다. 와, 엄청난 먼지 덩어리,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잡동사니 장난감 파편들, 온갖 잡다한 것들이 마치 자신의 소중한 아지트인 것처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때 검은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언제 굴러들어 왔지? 족히 몇 년은 된 것 같다. 청소를 마치고 컵에 물을 담아 콩을 담가 놓았다. 얼마 지난 후, 몸집이 불어나고 씨눈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아, 이것은 생명의 신비다. 여전히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파 밑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검은콩은 그냥 한 알의 콩일 뿐이었지만, 수분과 햇빛을 충분이 공급받아 내부로부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농부였다면, 밭에 콩을 심고 물을 주며, 하늘을 향해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면 100배의 결실을 보지 않았을까


이런 의미에서 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겨자씨 비유’를 매우 좋아한다. 참새의 한 줌 먹이로,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 작은데, 농부의 손에 들려 밭에 심긴다. 후에 자라서 산을 덮는다. 오히려 참새들이 집을 짓고 알을 품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성장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겨자씨 안에 생명이 존재하고 놀라운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비유다. 비록 작지만, 생명력을 소유한 존재, 문제는 생명력과 잠재력을 깨워내는 것이다.


오늘 내가 숨을 쉬며 살고 있다면, 여전히 내 안에 세상을 움직일 거대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작은 검은콩 하나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다음의 상황을 상상해 보라.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매일 눈을 뜨면 학교에 간다. 회사처럼 출퇴근 카드가 없으니 등교를 알리는 일은 도서관에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빼들고 담배도 한 대 피운다. 몇 명이 모이면 컵 차기 하며 시시덕대다가 강의실로 내빼기 바쁘다. 시쳇말로 강멍 때리다가 학식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다시 강의실, 강멍 때리기 무한반복, 동아리 룸에 들러 후배들과 잡담, 도서관에 책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저녁은 또다시 학식이다. 배가 부르니 커피라도 마셔야겠다. 후배 여학생을 붙잡아 커피를 강탈한다. 좋다고 웃고 떠들다가 이제 좀 공부해야지 도서관으로 복귀한다. 어떤 날은 일찍 가방 싸들고 당구장, PC방, 영화관, 커피숍에서 시간을 죽인다. 재수 좋은 날은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친구 자취방에 몸을 구겨 넣는다. 그래도 정신 좀 있는 친구들은 알바로 바쁘고 어떤 친구들은 취업준비를 위한 스펙 쌓기에 바쁘다. 무한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은 결국 쳇바퀴 도는 다람쥐가 되어버린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오늘 하루가 어제와 비슷하니 대충 미래도 예측이 가능하지 않을까?


대충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어린아이의 발에 차여 소파 밑으로 들어간 검은콩과 다를 바 없다. 어느 날 자신을 의식하게 되니 비참하다. 희망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생각이 결과를 낳는다는 말은 진리다.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바이러스에 의한 공포사회를 경험하게 될 거라고 했다. 에이즈(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는 일찍부터 인간 사회에 큰 이슈를 확장해 나갔다. 에볼라, 메르스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급기야 바이러스에 의한 재난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불안과 공포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2020년 현실로 찾아왔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모든 인류에게 불편을 넘어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모든 나라마다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새로운 변이들이 발생해 그 노력에 찬물을 뿌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날로 급변하는 과학문명은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메타버스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생각들이 현실 되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누구나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간다. 열심히 사는 것 같으나 모든 것에서 정체되고 오히려 후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사는 게 문제입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아도 문제없잖아요?’

‘비범함? 그딴 게 왜 필요한데?’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와 개인의 삶은 가능합니까?


미국의 사회발전 조사기구가 발표하는 사회발전지수 SPI Social Progress Index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순위를 인용하고 있다. SPI는 자신들이 설정한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꿉니다.”라는 사명에 근거하여 매년마다 설정하고 있는 목표를 활용해 국가의 삶의 질을 수치로 나타낸다. ‘인간의 기본 욕구’, ‘기회’, ‘웰빙’, ‘환경의 질’ 등을 세분화하여 평가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노르웨이가 1위에 뽑혔다. 최근 3년간 노르웨이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세상에 인식되고 있다. 


과연 이런 결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로렌 커닝헴Loren Cunningham(국제 예수전도단의 설립자)은 농장에서 일하는 스무 살 먹은 평범한 청년이었던 한스 넬슨 허그Hans Nielson. Hauge를 그 시초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날 허그는 “이 책은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한 해답이 있다네.”라는 말과 함께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극적인 변화가 허그의 삶에 찾아왔다. 이 단순한 사건은 후에 노르웨이 전체를 흔들어 놓은 허그 부흥Hauge Revival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의 회심은 순간에 일어났지만 조금씩 노르웨이에 변화가 나타났고, 현재에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씨앗이 되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지하묘지에는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과 묘비가 있다. 이 묘비에 새겨진 비문을 보자.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이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꾸었다. 내가 성장하고 현명해질수록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사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필사적인 한 가지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죽음의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이 거울이 되어 내 가족을 변화시켰을 텐데… 그것의 영감과 용기로부터 나는 내 나라를 더 좋아지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누가 아는가! 내가 세상까지도 변화시켰을지!”


이 묘비문은 잔잔하게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나를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나 자신으로부터다. 나를 제외한 어떤 변화도 그것은 욕망과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허그의 변화처럼 개인의 변화가 시작되는 곳에서 세상의 변화가 시작된다. 이런 변화는 생각을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선배와 함께 신입생이 분명해 보이는 세 명의 남녀 학생이 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선배는 이 친구들을 잘 지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세 친구를 떠넘기는 게 아닌가? 난감했다. 이 신입생들은 같은 동향, 같은 교회에서 자라온 사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여학생은 사범대학, 두 남학생은 문과 대학생이다. 나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듯 신원파악을 마쳤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많았을 텐데 누가 말해 볼까?”

오랜 침묵이 사무실에 채워진다. 나도 기다려야만 했다. 머뭇거리던 남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중학교 때까지는 곧 잘했는데… 고등학교 때 좀 놀았어요. 성적이 그렇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고요.” “사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어요. 어떻게 대학생활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이 학과에 오게 됐는데 사실 수능과 내신 성적이 이 학과밖에 갈 데가 없었어요. 갈만한 학과가 없었죠.”


“이 대학교에 입학한 게 실패한 걸까? 문제 많은 인생일까?”


지방 사립대학에 입학한 것이 인생에 실패한 거라면 너무나 가혹한 평가다. 세상 말들처럼 SKY 대학에 들어갔어야 인재고 성공한 것인가? 인-서울 해야 사람대접받는 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놀았다는 것이 저들을 평가하는 잣대라면 이런 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 


“선배님의 부탁을 떠나서 귀한 인연이 되었다. 내가 너희들의 코치가 되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

“코치가 뭔데요?”

“한마디로 너희들이 대학생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랄까?”

“아~네!”

“그래? 엉겁결에 대답한 건 아니겠지?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해, 지금의 결정이 4년 뒤, 대학 졸업의 질을 바꿀 수도 있거든, 다시 한번 물어볼게! 내가 너희들의 코치가 되는 것에 동의하니?”

“네~!”

“좋아, 그러면 1학기 시간표 작성해서 나에게 제출해줘, 그리고 코치로서 몇 가지 부탁할게 들어보고 할 수 있다면 서약서에 서명을 해주면 돼.”

“첫째, 도서관 중심 생활할 것, 오전 7시까지 도서관에 도착 자신만의 자리를 확보할 것”

“둘째, 동아리 활동하지 말 것, 하게 되더라도 2학기 이후부터”

“셋째, 생활비나 등록금에 문제가 없다면 아르바이트 금지!”

“넷째, 1학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처럼 학과 공부에 몰입할 것, 학과에서 전체 장학금 받을 것”

“다섯째, 매주 금요일 2시간 나에게 코칭을 받을 것”


세 친구는 나와 무료 코칭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

...

...

세상에는,

같은 종류의 나무는 있어도

같은 모양의 나무가 없다.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임한리 솔밭공원, 2020-02-13 오전7:36, 작가-김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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