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호 Apr 19. 2021

호텔 스케이트장과 공간의 계급화

21.02.21

애인은 생일날 야외 스케이트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눈여겨봤던 남산 중턱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스케이트장이 떠올랐다. 입장권이 1인당 4만 원이나 했지만 특별한 날 돈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입장권을 받아 장내로 들어가니 한강 너머 강남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실의 롯데타워부터 여의도의 스카이라인까지 보이는 위치였다.


아름다운 야경에 익숙해지자 널찍한 장내에서 여유롭게 스케이트를 즐기는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과는 다르게 서울의 절반을 조망할 수 있는 명당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이들의 대부분은 특별한 날 큰 맘먹고 들어온 커플들이 아니었다. 정규 스케이트 강습을 받는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었다.


서울 강남의 전경을 배경으로 두고 스케이트 강습을 받는 아이들은 어떤 가정에서 자라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단서로 추론을 해 볼 수 있었다. 스케이트장 푸드코트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먹는 핫초콜릿의 가격은 1만 2000원이었고, 1:1 레슨의 30분 강습료는 3만 5000원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한 달에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갈 레슨비와 빙상화 등 각종 장비까지 부담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5성급 호텔의 야외 스케이트장을 즐기며 자라날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그러지 못할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있을지였다. 레슨이 끝나고 5 원어치의 해물 라면과 차돌 떡볶이를 매일 먹을  있는 아이들과 코로나19 이번 겨울에는 야외 스케이트장은 꿈도 꾸지 못할 보통의 아이들은 얼마나 다른 경험을 하며 자라게 될까. 햐얏트 스케이트장에서의 레슨이 방과 후의 일상인 아이들이 코로나19 이후  안에 고립된 또래 친구들의 감정을 헤아리기를 바라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악화하는 계층  격차는 단순한 양극화의 문제가 아니다. 판데믹 이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의 궤적을 분리하는 중이다. 코로나19  세계인이 겪는 경험이라곤 하지만 전염병이 삶을 흔들어 놓는 정도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 가정 아이가 일과 시간에 집에 혼자 있는 비율(28.6%) 고소득 가정 아이(15%)  배에 이른다. 학교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자 개인 그룹 과외 수업과 체육 교실에서 또래를 만나고 사교성을 키운 아이들과 집에서 고립된  화상 강의로 학교 수업 진도를 겨우 따라가는 아이들의 격차는 이미 좁히기 불가능한 정도까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불평등은 삶을 분리하고 다양한 계층  의사소통을 마비시킨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능력이 되는 이들은 감염병이 강제한 새로운 고립의 환경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서울 도심 내 5성급 호텔로,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각종 캠핑 도구를 갖춰 산과 바다로 향한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염병이라는 확률 게임에서 터무니없이 불리한 패를 집어 들었다. 바이러스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이들을 노린다. 최근 집단 감염이 터진 아산의 보일러 공장은 집에서 안전하게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곳이었다. 또 다른 집단 감염이 터진 남양주의 한 공장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70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집단 생활하는 환경을 놓치지 않았다.


판데믹이 끝났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과 감정, 생각은 코로나19 입은 피해 정도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코로나19 생존의 위협을 느꼈던 이들은 마스크가 불편하고 집합 제한이 답답했던 수준의 경험만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다시 큰 맘먹고 지갑을 꺼내 1만 2000원짜리 핫초콜릿을 사서 입에 넣었다. 몰캉한 마시멜로우와 다크 초콜릿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컵을 쥔 두 손의 안쪽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컵을 내려 놓은 뒤에 눈에 들어온 이들은 내 또래의 스케이트장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600원짜리 일회용 핫팩으로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 곧 그들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눈을 돌렸다.


판데믹이 한창인 2020년 2월 초의 호텔 스케이트장에서 직원들, 나, 레슨 받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같은 공간 안에 있었지만 다른 세계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어렴풋이 서로의 일상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손가락 밑, 보이지 않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