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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Feb 23. 2021

왼손잡이와 혐오

2018년 6월, 이석태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 중 발언을 듣고

나는 왼손잡이다. 부모님은 모두 오른손잡이지만 다행이 내가 다른 손을 사용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덕분에 집에서만큼은 왼손을 사용한다는 게 색깔이 다른 옷을 걸치고 나가는 차이 정도로 이해하며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내가 왼손을 보고 밥을 먹으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한 마디 하는건 예사였다. 그들에게 왼손은 신성한 식사를 할 때 사용하기엔 조금 모자란, 혹은 부정한 손이었고, 나는 부정한 손을 사용하는 못배운 아이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난 잘못한 것 처럼 주눅들기 마련이었고, 편견에 찌든 노인네들을 무시할 정도로 강해지기까지는 꽤 머리에 피가 말라야 했다. 


이석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오늘 국회 청문회 중 동성애와 동성혼도 왼손잡이처럼 단순한 차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나는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시선과 차별이 그들을 얼마만큼 절망스럽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성적지향성보다 훨씬 사소한 왼손 사용 때문에 들었던 말들이 나를 신경쓰이게 했던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혐오와 편견은 성소수자들의 머리에 피가 마른 뒤에도 끊임없이 그들의 자존감과 자기애를 깎아내릴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오른손잡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듯, 성소수자들의 사랑도 이성애자들의 가정을 파괴하지도 위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박해받고 불행한 삶을 살도록 편견의 구석으로 몰아넣을수록, 이성애자들의 세상도 증오로 물들 수 밖에 없다. 호모포비아가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나라는 각종 혐오와 편견에 깊게 물들어 있다. 여성을 코르셋 안에 가두고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미소지니, 이민자와 난민을 이등인간 취급하는 제노포비아, 대중문화 속에서 웃음코드로 소비되는 장애인혐오 등 우리는 이미 증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석태 후보자의 임명 동의가 이 혐오의 물결을 걷어낼 성숙한 담론의 시작이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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