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궤도를 1mm쯤 바꿔주는 반딧불 같은 글하나
1mm의 궤도, 자포자기하지 말아라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 삶의 궤적이 조금 바뀌는 그런 순간들. 다산의 글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주진 못했지만 그 진실된 글귀 하나는 고장 난 우주선에 올라탄 캡틴이 자리를 다시 고쳐 앉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힘 정도는 줄 수 있었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변화. 1mm 정도는 올바른 방향. 반딧불만큼이나 작고 희미하지만 그 빛은 신의 안배 같은 희망이다. 이렇듯 우연히 읽었던 책 한 구절은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았다가 지구 탈출 위기에 처한 나에게 불쑥 찾아온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삶의 궤적들이 있다. 우리의 여정을 닮은 그 궤적의 흔적들은 아름다운 나선형의 흔적을 그리며 다른 삶의 궤적들과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혀있어 때로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한다. 우리들의 여정에 올바른 방향이 존재한다는 듯이 신의 비밀처럼 숨어있던 길잡이는 우리가 궤도 밖으로 튕겨져 나갈 때마다 나타나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가야 할 길로 방향을 틀어준다. 그 길잡이는 때로는 가슴을 울리는 말 한마디 일 때도 있고, 따뜻한 포옹일 때도 있고, 이름다운 음악이나 어느 외로운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일 때도 있다. 당신은 모르지만 당신 근처를 맴도는 길잡이가 희미한 반딧불로 길을 비춰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경이롭고 신비한 방법으로 당신 곁을 지키며 당신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길잡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잡아보길 바란다.
내가 마주친 나의 길잡이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의 궤도를 응원하며.
자포자기하지 말아라-아이들에게
오늘날, 세상을 쥐고 흔드는 공경의 자제로 태어나 벼슬자리와 문호를 이어받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너는 지금 폐족이다. 만약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해서 처음보다 더욱 완전하고 좋게 된다면 또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어떻게 하면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하는 것이겠느냐? 오직 한 가지 독서뿐이다. 독서는 세상에서 최고로 깨끗한 일이다.
정약용, 박무영 옮김,「뜬 세상의 아름다움」,2001,168~169p
이대로는 안된다. 비상탈출!
나를 구조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제대로 된 삶에서 숨을 쉬고 싶었다. 내 머릿속을 휩쓸고 다니는 비관적인 생각들과 감정들이 나를 좀먹고 있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나는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해 그럭저럭 작은 회사를 다니는 그럭저럭 사는 직장인이었으나 속은 마치 폭발하기 일보직전의 위험한 우주선에 올라탄 조종사 같았다. 그 우주선은 방열 막도 없이 불의의 충돌사고로 거대한 행성의 대기권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응급상황에 놓여있었다.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며 곧 추락할 것을 경고하는 소리들과 선내를 가득 채우는 열기에 질식하고 말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힌 캡틴. 그 우주선 안에 갇힌 것은 나였고 그 우주선의 운전대를 잡은 것도 나였다. 우주선이 더 이상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상 탈출하라는 신호와 함께 위험을 알리는 빨간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비상! 비상!'
손잡이 하나만 당기면 나는 우주선에서 탈출함과 동시에 지구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그야말로 지구 탈출 3분 전. 이대로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인가?
나는 스트레스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진실된 한마디는 때때로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바꿔놓는다. 난기류를 탄 우주선에서 탈출시켜주고 거친 풍랑 맞은 돛단배를 순풍 위로 실어다 준다. 스트레스로 터지기 직전 나를 구한 건 다산 정약용의 편지 하나였다.
가을 매가 날아오르듯 - 학유에게 노자 삼아 주는 훈계
운명의 수레는 격렬하게 구르며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이 세상에 뜻이 있는 자가 잠시의 재난 때문에 끝내 청운의 뜻까지 꺾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나이 대장부의 가슴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이 있어서, 건곤도 좁아 보이고 우주도 내 손바닥에 있는 듯 가볍게 여겨야, 이래야 하는 것이다.
정약용, 박무영 옮김,「뜬 세상의 아름다움」,2001,196 p
어떠한 연유로 대학 시절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슬쩍 보았던 다산의 글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던 나의 생존본능이었을까? 어울리지도 않게 읽어 두었던 그 책은 내게 삶의 궤적을 바꾼 진실된 한마디였다. 그 책은 조선 후기, 무너져가는 봉건 사회 속에서 고결하게 빛났던 다산의 산문을 엮은 책이었는데, 책 속의 다산은 그저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닌 청렴한 학자이자, 한 남편이었고, 따뜻한 아버지였으며 풍류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친구였다. 위의 글귀는 유배 중이던 다산이 8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준 훈계다. 유배생활 중에도 폐족에 처한 아들들이 절망하지 않고 올바를 길을 갈 수 있도록 절절하게 교육한 다산. 편지로 밖에 전할 수 없었던 그 진심 어린 마음은 긴 세월에도 바래지지 않고 가슴을 절절하게 울린다.
1mm의 궤도, 자포자기하지 말아라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 삶의 궤적이 조금 바뀌는 그런 순간들. 다산의 글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주진 못했지만 그 진실된 글귀 하나는 고장 난 우주선에 올라탄 캡틴이 자리를 다시 고쳐 앉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힘 정도는 줄 수 있었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변화. 1mm 정도는 올바른 방향. 반딧불만큼이나 작고 희미하지만 그 빛은 신의 안배 같은 희망이다. 이렇듯 우연히 읽었던 책 한 구절은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았다가 지구 탈출 위기에 처한 나에게 불쑥 찾아온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삶의 궤적들이 있다. 우리의 여정을 닮은 그 궤적의 흔적들은 아름다운 나선형의 흔적을 그리며 다른 삶의 궤적들과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혀있어 때로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한다. 우리들의 여정에 올바른 방향이 존재한다는 듯이 신의 비밀처럼 숨어있던 길잡이는 우리가 궤도 밖으로 튕겨져 나갈 때마다 나타나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가야 할 길로 방향을 틀어준다. 그 길잡이는 때로는 가슴을 울리는 말 한마디 일 때도 있고, 따뜻한 포옹일 때도 있고, 이름다운 음악이나 어느 외로운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일 때도 있다. 당신은 모르지만 당신 근처를 맴도는 길잡이가 희미한 반딧불로 길을 비춰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경이롭고 신비한 방법으로 당신 곁을 지키며 당신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길잡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잡아보길 바란다.
내가 마주친 나의 길잡이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의 궤도를 응원하며.
자포자기하지 말아라-아이들에게
오늘날, 세상을 쥐고 흔드는 공경의 자제로 태어나 벼슬자리와 문호를 이어받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너는 지금 폐족이다. 만약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해서 처음보다 더욱 완전하고 좋게 된다면 또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어떻게 하면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하는 것이겠느냐? 오직 한 가지 독서뿐이다. 독서는 세상에서 최고로 깨끗한 일이다.
정약용, 박무영 옮김,「뜬 세상의 아름다움」,2001,168~16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