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그리기도 전에 슬럼프가 왔다. '뭐라도 해보자, 웹툰 그거 늘 그리워했던 거잖아.' 침대에 누워만 지내다가 나를 위해서 시작하게 된 웹툰. 웹툰이라는 장르가 사실 어려운 분야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터 수업시간에도 만화를 그렸고, 미대를 졸업했고, 대학 시절 짧게 연재도 해봤다. 물론 정식연재는 아니었더라도 늘 시도해왔던 분야라 웹툰을 그리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였을까? 너무 잘 해내고 싶었다. 늘 내 삶을 괴롭히던 완벽주위가 또 다시 내 앞 길을 막았다. 그림을 늘 그려왔고 미대를 졸업했단 이유로 잘 그려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압박했다.
'미대까지 나왔는데 미술을 전공했다는 티가 나야지 않겠어?'
'그림을 제대로 그린지 꽤 됐는데, 내가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남들보다는 달라야해.'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내 머리속엔 이런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쉽게 시작은 했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미대를 졸업하고 나선 그림에 손을 놓았다. 미대를 다니면서 환상도 많이 깨졌고, 내가 공부하는 것들이 전부쓸모없게 느껴져 회의감이 많이 느껴졌다.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는 바로 웹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그 당시 바로 취직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을 뿐이고 별다른 의미도 없었으며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회사생활이 어땠는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이 고장이 났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사다난했던 학창시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몸에 맞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삶이 지겨워졌기 때문일까? 작은 월급에 모이지 않는 돈과 씨름하며 허덕였기 때문일까? 충동적으로 본가로 내려와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밖에 나가기가 어려웠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모두가 나를 비난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다가 문득 옛 생각이 스쳤다. 학창시절 내내 즐겁게 그리던 그림들이.
'웹툰을 한 번 그려볼까?'
어느 날 문득 웹툰을 그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위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이었다. 옛날에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을 다시 해봐야겠단 생각. 그 순수했던 마음이 나를 다시 삶으로 끌어줄 수 있을 것이리라.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내가 정말 쉽게 쓸 수 있는 이야기. 즐겁고 귀엽고 소소하지만 어딘가 나의 어두운 부분을 닮은 그런 이야기. 결론은 내가 나에게 쓰는 위로였다. 나를 응원해주고 나를 일으켜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이 이야기에 응원을 받으면 다른 사람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아이디어는 쉽게 떠올랐다. 나를 위해 쓴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떠올랐다. '미대생 이야기를 써보자.' 미대생이었으니 미대생의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방에 처박혀서 웹툰을 기획하고 또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장난 나는 시작도 전에 슬럼프를 겪었다.어렵게 겨우 1화를 그려 누구나 만화를 올릴 수 있는 연재사이트에 올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내용이 짧다는 댓글까지 달렸다. 자족하기 위해 그린 것이지만 정작 지적하는 댓글이 달리니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분량을 먼저 다시 설정했다. 지치고 싶지 않아서 최대분량이 아닌 최소분량에 맞춰야 했다. 다른 웹툰들을 보면서 작가들은 어느 정도 분량을 그리는지 컷 수를 하나하나 다 세보았다. 많으면 100컷이 넘어갔고 못해도 최소 80컷 정도는 그려야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량에 놀랐지만 욕먹고 싶지 않았던 나는 꼬리를 내리고 최대한 맞추기로 했다. 그 뒤는 주인공을 설정했다. 주인공은 나를 닮았으나 나보단 명랑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만든 주인공이 나를 위로해주길 바랐다.
이렇게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즐겁지만 고통스러운 작업이 시작됐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림을 한동안 안 그리다가 다시 시작하려니 온 몸이 삐그덕대는 느낌이었다. 남들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이질적이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런 나만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이렇게 열심히 그리는 건 입시 준비 하던 때 이후 처음이었다. 다시 그리고 다시 그리고... 1화는 올라갔지만 그 1화가 계속 바뀌는, 정체선에 서 있었다. 이만하면 됐다싶다가도 다시 보면 어딘가 모자라보였다. 그렇게 지지부진 하던 때 조금씩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