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Aug 23. 2023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되는 문제

이슬아, <날씨와 얼굴>

분명 어떤 얼굴들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말하려면 특정 방향으로 힘이 기우는 세계를 탐구해야 한다. 그게 내가 배운 저항의 방식이다. 중요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 누락된 목소리를 정확하게 옮겨 적는 것. 여러 사람에게 묻지 않고는 쓸 수 없었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프롤로그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은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을 묶어 만든 책이다. 그동안 신문 칼럼에서 한 번 읽었던 글들도 책으로 묶어 일관된 흐름 속에서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 이슬아는 여전히 상냥한 포즈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띠지에 찍힌 얼굴처럼 조금은 창백하고 날선 표정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듯 보인다. 도입 부분은 최대한 간단히, 사실을 말할 때는 최대한 감정을 숨겼다가 독자가 방심하고 있는 그 순간 솔직하게 내뱉는다.

나는 동물이 부재하지 않는 고기를 상상해 본다. 상상할 수가 없다. 적어도 이 시대에 그런 고기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고기 아닌 동물을 상상한다. 공장식 축산이 포획하지 않은 동물의 삶을 상상한다. 그것이 약간 미지의 영역으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고기보다 동물을 모른다. 나는 다시 한번 복희의 말을 기억한다. "이건 동물에 대한 이야기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되는 문제야."

-이슬아, <날씨와 얼굴> 중 「다시 차리는 식탁」

내가 이제까지 먹어온 소, 돼지, 닭은 몇 마리쯤 될까. 아니, 질문을 한 번 바꿔보자. 내가 이제까지 먹어온 소, 돼지, 닭은 몇 '명'쯤 될까? 언어는 동물과 사람을 구분한다. 동물의 입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이다. 동물이 낳은 자식은 아기가 아니라 '새끼'다. 나는 마트에서 살치살, 갈빗살이라고 적힌 포장지를 보며 소의 일생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어떤 부위의 고기가 내가 끓일 찌개에, 볶음에 더 잘 맞을지 생각할 뿐이다. 나와 남편은 잘린 붉은 단면을 보며 "고기가 참 좋네"라고 말하곤 한다. 이 문장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아마 '맛이' 좋고 신선해 보인다는 말일 것이다. 철저히 인간을 기준으로 동물의 상태가 좋다고 말하는 것. 이처럼 가축으로 길러지는 동물들은 철저히 타자화된다. 그들은 '맛'을 위해서 태어나고, 길러지고, 항생제를 맞고, 죽임당하고, 여러 조각으로 동강이 나서 냉장되거나 냉동된다.   


며칠 전, '1번 달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달걀에 프린트 된 마지막 번호가 1번이면 방사해서 기른 닭의 달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달걀의 가격은 케이지에서 공장식 사육을 당한 달걀보다 (어쩌면 당연히) 몇 배가 비싸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친구는 덧붙였다. 맛이 다르다고. 달걀을 깨 보면 노른자와 흰자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고. 

자연에 방목해서 기르는 닭이 많아져서 다행이라고 말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아, 엄마인 나는 4번을 먹든 말든 상관없지만 애들을 위해 비싸도 1번을 사는 우리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1번 달걀의 소비자가 많아져서 '일부 방사되는 닭들'이 늘어나면 좋은 것일까?


"인간은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인 힘으로 산다." 『절멸』에 적힌 문장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의 입장에서 쓰인 글의 일부를 옮겨왔다. .. (중략).. 우리는 공장식 축산과 수산의 소비자이거나 거대한 동물 산업의 관계자이거나 최소한 구경꾼이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중 「어떤 시국 선언」

이슬아의 칼럼은 동물에서 환경, 그리고 사람들로 이어진다. 택배 노동자들, 장덕준 씨, 이주 여성들, 성은 씨... 작가는 이들을 마주하며 "내가 직접 하지 않는 노동으로 내 삶이 굴러간다는 사실이 자주 새삼스럽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해 온 어른들"의 삶을 듣고, 기록한다. 정말 그렇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곳, 내 주변의 물건들만 둘러봐도 내 스스로 만든 건 없으니까. 돈을 주고 샀으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쿠팡 멤버십에 가입해서 매달 돈을 내고 있으니까 나는 '정당하게' 택배를 받을 권리가 있는 걸까. 

그러면 나는 이제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인가? 택배 주문을 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나는 뻔뻔하게도 공장식 축산의 심각성을, 동물들의 고통을 알고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기를 먹고, 택배를 주문하게 될 것이다. 그저 고기를 집어 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주문 완료 버튼을 클릭하기 전에 멈추어서 내게 이미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있는지 되돌아볼 뿐.  

어떤 곳에선 나의 비건 지향 생활이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 같은 건 쓰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대답하고 싶을 정도다. .. (중략) ... 비건 지향 생활 역시 완벽할 수 없고 나는 앞으로도 크고 작은 부끄러운 짓을 반복하겠지만,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관두지 않고 싶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의 앞뒤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중 「몸을 씻으며 하는 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은 '다시' 읽혀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