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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ug 26. 2023

사회의 속도, 나의 속도, 그들의 속도

홍은전, <전사들의 노래>

분명히 단어는 그저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불과할 뿐인데도 이상하게 감정이 느껴지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그 속에는 귀여움, 나아가 나라의 미래라는 사회적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어떨까. 그저 신체 일부분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쌍함, '약자'라는 이미지가 이미 들어있지 않을까. 



이 책은 홍은전 작가가 여섯 명의 장애해방운동가를 인터뷰한 기록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말한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서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라고. "우리는 선량한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고 아프고 늙고 가난한 사람을 버리고 폭주하는 야만적인 사회의 발목을 잡았다. 한 명의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선 이 사회가 통째로 이동해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속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속도와 이 책의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속도에 관해서.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다. 그것도 책의 반쯤 읽고 나서. 나는 한창 활동가들의 '싸움'이야기에 매료된 상태였다. 누구도 될 거라 믿지 않았던 일들을 끝까지 해 낸 사람들의 과거를 듣는 읽은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이규식의 인터뷰 끝에 홍은전은 "기록자인 나는 규식의 언어장애가 부담스러웠다."라고 쓴다. 어떤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 위한 짧은 설명이었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신나게 읽던 나 자신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보았다. 인터뷰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 사건들을 견뎌내기까지, 그리고 그걸 다시 이야기하기까지. 그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책을 읽는 한, 두 시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한 책을 소비하고, 또 다른 책을 읽는 내 삶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느껴졌다. 



아이와 마트를 가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느꼈을 것이다. 혼자서 방문했다면 10-20분 만에 끝날 장 보기가 기본 30분, 1시간까지 길어지는 경험을. 특히 유아차를 끌고 있다면, 또 유아들이 타는 자전거나 킥보드를 끌고 길을 가다 보면 수많은 계단과 턱 앞에서 망연자실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연히 불편하다고 느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거였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나는 다시 '평범한 보행자'가 될테니까. 내가 '앞으로도 평생' 불편함을 느낄 일은 없을 거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버스 승강장에 들어서면, 어떤 버스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알 수 있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집에서 버스 앱에 접속해 언제 버스가 오는지 시간에 맞춰 탈 수 있다. 그 속도를 다시 생각해 본다. 10분 뒤에 도착하는 버스, 5분 뒤에 도착하는 지하철. 그건 누구를 기준으로 한 시간 알림일까. 당연히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노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다.


차가 막히면 더 빨리 갈 수 있는 또 다른 도로를 뚫는 사회. SRT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도 안 걸리는 사회.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사회의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마 나도 여기에 속한 한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사회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 속에서 속도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멈추게 해 주었다. 


장애인 운동은 차별의 원인이 '장애가 있는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라고 외쳤다. (중략) 장애인 운동은 이 사회의 기본값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라는 것을 일깨우며 사회의 기본값을 뒤흔드는 싸움을 해왔다. 




 내가 만나왔던 장애인들을 떠올려본다.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이 사실 자체가 이 사회의 기본값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쓰는 이야기보다 쓰지 않은 이야기가 더 중요한 것처럼.  나는 '어느 선까지' 공개된 곳에서 글로 쓰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 이 책의 인터뷰이들도 말한 것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속도에 맞춰서 들어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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