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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6. 2023

엄마는 남자가 되고 싶은 거야?

커트머리를 하고 집에 왔더니, 아들이 물었다. 

"엄마 머리가 나처럼 짧아졌어. 혹시 엄마는 남자가 되고 싶은 거야?"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을 할 수 있다, 라 얼버무렸지만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짧은 머리는 남자만 할 수 있나? 


아마 아들은 나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이제까지 자기가 봐왔던 -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TV에서- '엄마'의 헤어스타일과 달라서 그렇게 이야기한 거겠지. 그만큼 우리가 '정형화된' 남성, 여성의 모습에 길들여져 왔고, 그런 교육방식은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특히 교과서 본문이나 눈높이 학습지 국어 본문 읽어줄 때... 엄마가 일하러 가서 우산을 못 챙겨줬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음.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그 본문에 아빠의 존재는 등장하지도 않았고, 우산을 가져다준 사람은 '일하지 않는 옆집 아주머니' 였다는..)

주변의 반응도 낯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긴 머리였을 때, 펌을 했을 때, 단발머리였을 때는 아무도 나에게 '왜' 머리스타일을 바꿨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머릿결이 너무 상했다는 뻔한 대답을 내놓았고, 물론 그다음에는 잘 어울린다, 깔끔해 보인다, 어려 보인다는 3종 자동 칭찬세트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 엄마들에게 가장 큰 칭찬은 아마 예쁘다는 말도, 날씬하다는 말도 아닌(물론 이 말들도 듣기 힘든 칭찬이지만 ㅎㅎ) 어려 보인다는 말일 것이다. 친구들과 주고받는 카톡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서'라는 문장들이다.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어느새 칭찬을 넘어 '기본 예의'가 되었다. 아이의 엄마지만 엄마로 보이지 않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와 맞닿아서 새로운 시장들이 열렸다. 요가, 필라테스, 개인 PT, 프로필 사진으로 대표되는 '건강하게 삐쩍 마른 몸'에 대한 선망과 피부과 시술, 숱 많고 매끄러운 헤어스타일, 지나치게 꾸민 것 같진 않지만 집에서 바로 나온 것 같지도 않은 내추럴 하면서도 단정한 옷 소비로 대표되는 '어려 보이는 조건 만들기'는 이제 어느 정도 엄마들에게 필수 사항이 되었다. 



커트를 하고 나니, 훨씬 편하긴 하다. 묶은 머리를 풀 때 머리카락이 뽑히지도 않고, 여기저기 작은 머리고무줄이 뒹굴거리지도 않는다. 머리 감을 때도 샴푸 펌핑 한 번이면 끝나고, 머리 말리는 것도 쉽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금방 머리가 길어 덥수룩해지고 (남자아이들 한 달에 한 번씩 커트하듯이) 드라이를 해줘야 훨씬 '예쁜' 머리 스타일이 된다. 둥근 빗이 달려있는 고데기로 드라이를 넣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는다. 머리만 짧게 자르면 모든 꾸밈 노동에서 해방될 줄 알았던 환상을 가지고 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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