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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23. 2023

하지만 왜 증오를 품어야 해?

김초엽, <파견자들>

김초엽이 그려낸 또 다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파견자들>은 곰팡이, 균류와 비슷한 '범람체'가 지상을 점령한 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범람체와 접촉한 사람들은 '광증'이 발현되고, 광증 발현자들은 감시 기계에 의해 격리 수용소로 따로 분리된다. 범람체를 피해 지하 도시로 쫓겨난 인간들은 파견자들을 보내 지상을 탐사하게 한다. 파견자가 되기 위해서는 광증 저항성 테스트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작품의 주인공 태린은 파견자가 되기 위해 도전한다. 


인간은 이 '범람체'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떨어졌고, 지상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범람체에 닿으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스스로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범람체라는 새로운 위협 물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떠올랐다. 우리는 과연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는가? 오히려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엔데믹이 선언되고,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되돌아온 것만 같다.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일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들, 잃어야 했던 수많은 목숨들은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남은 것은 더 많은 플라스틱 제품들, 더 많은 데이터들, 빈부격차와 인플레이션... 아마도 우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탓을 하듯, 이 작품 속에서는 범람체를 피해야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범람체때문에 인간의 문명이 파괴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범람체를 증오한다. 하지만 태린의 머릿속에 있는 정체 모를 존재는 태린에게 '묻는다.'

-- 하지만 왜 증오를 품어야 해?

왜 증오를 품어야 하느냐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왜 범람체에 대해 증오를 품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건 마치 인간을 절멸에 이르게 한 거대한 지진이나 해일 따위를 왜 증오하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문명을 말살했으니까. 자유를 빼앗았으니까. 우리를 지하 세계에 가뒀으니까. 그리고 또 ......

태린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낯선 존재를 부정하다가 결국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지어주며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쏠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낯선 존재와 태린이 어떻게 서로 두려워하고, 불화하고, 시간을 가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역시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던 태린의 머릿속 목소리를 태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태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있었다. 라부바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드넓은 하늘과 저 너머의 우주. 범람체들은 바로 저 우주로부터 왔다. 한때는 인간이 갈 수 있고 소유할 수도 있다고 믿었던 먼곳의 행성으로부터. 우주를 갈망하던 인간은 우주의 한 조각이 지상에 불시착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 태린은 그것이 파국이라고 생각해왔다. 우주를 갈망한 인간의 잘못도, 지구에 불시착한 먼지들의 잘못도 아니지만 때로 누구의 탓으로도 돌릴 수 없는 파국이 있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파국이기만 했던 것일까. 이제는 어떤지 그렇게 확언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곰팡이, 바퀴벌레, 쥐, 파리, 날벌레들, 최근에 다시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빈대... 그것들은 과연 나의 깨끗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없어져도' 되는 것인가?  나는 더러운 그들과 '다른' 정말 깨끗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가? 나와 다르다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노와 증오를 마음대로 표출해도 되는가?

혹시 당신이 (초)능력을 가진 파견자들이 지상으로 나가 범람체를 없애고 다시 지구를 탈환하는 이야기를 예상했다면, 미드나 마블 영화를 추천한다. 대신 이 책은 범람체같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삶을 파괴시킨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다른 시선을 열어준다.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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