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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26. 2023

홈, 스위트 홈!

작년까지는 워킹맘이었고, 올해는 전업맘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정확히 워킹맘, 전업맘이라고 나눌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경력단절이었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업맘이 었다가 워킹맘이 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나눠서 부르면서 서로 공격하라고 부추기는 건  '누구'인지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네.)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을 들을 때, 내가 시간이 있으니까 장을 봐 놓을게,라고 말할 때, 하교 후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갈 때, 한 번씩 울컥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왜? 돈도 못 버는 니가 왜 억울한 건데?

사람들은 전업맘 VS 워킹맘 구도로 이야기하기 좋아하지만, 사실 워킹맘이라고 해서 육아와 가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워킹맘의 퇴근은 엄마로서의 출근이고, 전업맘에게는 쉬는 시간이 있을 뿐, 퇴근은 없다. 그러니까 워킹맘이나 전업맘이나 퇴근은 없다는 슬픈 현실...

가장 슬픈 건, 우리 모두 그런 힘든 시절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이 일들은 계속 반복될 거라는 사실이다. "나 때도 다 그랬어." "우리 때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어."라는 말로 육아와 가사일이 여성의 것이라는 공고한 고정관념은 계속된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고, 출근한 여성들의 자리를 또 다른 여성-엄마 또는 이주노동자 여성들-로 채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사회의 요직을 차지한 여성들을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가정을 돌보는 자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부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슬아의 인터뷰에서 가사노동 역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가녀장의 시대>에서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어머니를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해서 노동의 대가를 주는 것이 하나의 큰 줄기라고 말했다. 가사노동과 재생산 영역(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동의한다. 하지만 가사노동이 어머니의 것이라는 것 (물론 <가녀장의 시대>에서는 청소 및 집안 수리는 아버지가 담당하고 어머니는 요리를 주로 담당한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청소 아저씨보다 청소 아줌마라는 단어가 익숙한 이유, 식당 아저씨 보다 식당 아줌마가  자연스러운 이유, 그럼에도 환경미화원과 셰프라는 단어를 들으면 '남성'을 떠올리는 이유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한 '필리핀 가사근로자'가 미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환영했던 필리핀 정부에서 오히려 반대한다고 한다. 이유는 필리핀 가사근로자에게 육아와 가사노동(청소, 요리, 설거지, 빨래 등)을 모두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상식적이게도(!) 자기네들이 파견할 사람들은 육아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어느 정도 한국어도 할 줄 아는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인데 육아에 가사까지 (그것도 월급 100만 원... 하...) 하라고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오뜨밀 보다가 들었는데 뉴스 기사는 검색해도 안 나오네.. 기억에 의존한 거라 확실하지는 않을 수 있음) 

그래서 나는 오히려 돌봄과 가사노동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가사노동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그 일들은 '어머니의 위대한 희생' '깔끔한 여성'이라는 신화적인 이미지로 여성들에게 떠넘겨져 왔다. 주부들이 미니멀리즘을 꿈꾸는 이유가 뭐겠는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가 불편한 건 왜 그렇겠는가. '홈, 스위트 홈'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다른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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