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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30. 2023

나 자신을 향한 친절

김슬기, <나로 향하는 길>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몸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떠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그 여행은 여행을 떠나는 자신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작가는 이 질문을 가지고 아이가 열 살이 되는 때를 기점으로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이름하여 한 달에 한 번, 혼자 떠나는 책방 여행.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긴 하지만, 아마도 마냥 홀가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의 첫 번째 여행길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무사히' 이 여행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 아내 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성에게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하고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아이가 있든 없든, 한 사람이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을 결심하고, 그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나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나선 이유는 그게 지금까지의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거나 돈을 줘도 할 생각이 없었던 일,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던 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외의 선택을 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뒤엎고(?) 작가는 그 어려운 일들을 차근차근 해낸다! 사람들은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렌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맞닥뜨리면 이 여행을 왜 왔는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여행을 자처했는지 후회하는 순간들이 온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어떨 때는 나의 기지로, 어떨 때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해나가는 순간들이 모여 여행의 의미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했던 여행도 떠올랐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자면) 코로나19가 막 확산되기 시작하던 겨울,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취소할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동선을 최소한으로 잡고 떠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그 여행을 떠올리면 '적막'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당시의 제주는 조용했고, 사람들은 서로를 조심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는데, 시간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여행 블로그를 보면 하루에 몇 군데의 장소를 방문하는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카페와 책방의 존재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쓰는 사람은 많아지고, 읽는 사람은 소멸한다고 말하는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책이라는 물건을 들여다보고, 책에게 걸맞은 자리와 공간을 마련해 주는 책방지기의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책방이라는 장소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니까. 


 



여행을 가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장소와 실제 방문했을 때의 장소가 번번이 어긋나거나 조금씩 다르게 다가오는 장면들도 기억에 남았다. 일상 속에서의 나는 익숙한 장소, 익숙한 일들만 반복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낯선 공간으로 나가보면 새로운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나 자신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서가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로 향하는 길이 시작되지만, 나로부터 시작되는 길은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존재들, 나와 다른 존재들로 범위를 넓히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친절하게 행동하려면 당신이 종종 자신이 걷던 길에서 이탈해야만 한다'라는 타라 브랙의 말은 진실이었다. 1년의 여정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친절함'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친절. 오랜 시간 나에게 간절하고도 아득했던 태도가 나에게 왔다. 





카페에 앉아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창밖으로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만 있으면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겠는데?' 낯선 곳으로 떠나 모험을 한다는 건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주변의 모습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걷는 길도 조금씩 모습이 달랐고, 아이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라고 있었다. 물론 나도 어제의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먼저 나에게 친절해지자. 그러면 내 아이, 내 가족에게만 머물렀던 시선을 돌려 더 넓은 세상을 돌아보고, 더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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