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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06. 2023

게임에 성별이 있다면

“안녕! 오늘은 새로 출시된 게임을 해 볼 거예요.”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게임 유튜버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로블록스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둘째 아이는 TV에 게임 중계를 틀어 놓고 자신은 다른 게임을 한다. 아이에게 게임을 시작하게 한 이유는 부끄럽지만 단 하나였다. 그 아이가 ‘남자’ 아이라서. 운동에도 특별히 관심이 없고, 내성적인 성향의 아이가 게임까지 잘 모르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첫째 아이가 게임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첫째는 게임에 ‘재능’이 있다. 처음 해 보는 게임도 금방 파악하고, 반응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그런 첫째 아이를 보면서 내 고정관념을 또 하나 바꾸게 되었다. 남자라고 무조건 게임을 잘하는 건 아니구나.

나는 지금도 게임에 흥미가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오락실에 가는 건 뭔가 잘못된 일을 하는 거라고 여겼고, 게임을 하는 것 또한 여성성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다. 게임은 (남동생을 포함한) 남자애들이나 하는 폭력적인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온 가족이 로블록스를 하면서 돌이켜보니 나는 늘 게임을 해 왔다. 지뢰 찾기와 카드놀이 같은 단순한 게임부터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롤플레잉 게임들과 전국민적인 게임이었던 애니팡까지. 사실 게임은 남성의 것도, 여성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성이 게임을 즐길 수 있기까지는 수많은 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 속에서 대부분 여성의 역할은 그저 최대한 옷을 적게 입고 ‘힐’(치료)하는 부수적 존재 아니면 죽을 때도 성적함의를 품은 포즈와 소리를 내는 성적대상화된 존재로만 그려진다. 또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는 ‘사상검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림버스 컴퍼니>라는 게임 내 여성 캐릭터가 전신 수영복을 착용한 것에 대해 유저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 여성 캐릭터 역시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키니’를 입지 않았다고 그림을 그린 작화가의 사상검증이 필요하다고 나섰고, 작화가의 개인 SNS를 복원해서까지 불법 촬영 규탄 시위와 페미니즘에 관한 게시물을 리트윗 한 증거를 찾아냈다. 물론 게임제작사는 그 작화가를 해고했다. 전투를 하는 게임인데도 핫팬츠와 탑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도대체 남성들은 ‘여성’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최근엔 넥슨 게임 홍보영상에 삽입된 집게손 이미지를 두고 페미니스트가 일부러 그린 것이라며 항의하고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항의가 있자마자 넥슨은 신속하게 “네, 조치하겠습니다 고객님!”을 외쳤고, 영상을 제작한 협력업체는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사이버 불링에 시달려야 했다. 그 후 이 업체는 그 영상은 지목된 A 씨가 만든 게 아니라 남성작화가가 작업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씨에 대한 괴롭힘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여기(게임)는 내가 주인인 남자들만의 공간인데 왜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느냐는 거다.

제19회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주목받는 경기 중 하나는 올해 처음 정식 정목으로 선정된 e-스포츠이다. 그중 LoL(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금메달을 수상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스포츠는 출전 선수 모두 남성, 해설자도 모두 남성이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성 국가대표선수가 없는 유일한 종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성별불균형이 심한 종목이고, 그건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여성이 사회 진출도 활발하게 하고 있고, 여성을 배려해 주는 문화도 많이 생겼고, 어딜 가나 여성들이 없는 곳이 없는데, 게임까지 차지하려고 하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게임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고 게임은 실제가 아니니까 그 속에서는 마음껏 여성대상화가 이루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과연 옳은 걸까? 이미 초등, 중고등 학생들 사이에서 게임은 기본 옵션이 되었고,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과연 그 대중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기는 한 건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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