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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14. 2023

가만히 지켜보는 일

특별한 일이 없는 오후에는 30분 정도 산책을 한다. 아파트 주변으로 흐르는 천을 따라 걷다가 되돌아 올라오는, 늘 같은 코스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다시 올라올 때는 숨이 턱까지 찬다. 헉헉거리며 아파트 뒷문을 통해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지름길로 가다 보면 거의 매일 만나는 고양이들이 있다. 어떤 날은 두 마리, 또 다른 날은 한 마리. 내가 지나가면 경계의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는 작은 고양이는, 며칠 새 훌쩍 자라있고, 너는 지나가든 말든 빵을 굽고 있는 큰 고양이는 그저 여유로워 보인다.

집이 없어서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싶다가도 어느 날은 따뜻한 햇볕을 쬐며 뒹굴뒹굴하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며, 집이 없다는 건 모든 세상이 집이라는 말과도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용기도, 가까이 다가가 본 적도 없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고양이들의 안부가 늘 궁금하다. 그렇게 오늘도 일상을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보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제는 서먹해져 버린 친구들도 어디선가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길보라는 "당신과 나의 차이가 틀리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건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도 함께. 아마도 그건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바라는 대로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고 작은 성취를 함께 기뻐하며 슬픔을 통과할 수 있도록 가만히 지켜보는 일.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이 쌓인다는 건 아마도 그런 경험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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