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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pr 22. 2024

아름다운 세 번째 눈

조예은, <꿰맨 눈의 마을>

디저트류는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찌개나 전골처럼 두 끼를 연이어 먹을 수도 없다. 

나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 오래 두고 보기는커녕 다 먹기도 힘든 걸 만드는 마음이 궁금했다. 

<에세이-빛나는 모험들>




자음과 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단편소설 세 편과 작가의 에세이,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비교적 짧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에세이와 해설이 함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소설가는 어떻게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시작할까?'하는 궁금증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위의 문장이 이 소설의 시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배경은 먼 미래, "얼굴이 아닌 곳에 난 이목구비를 보면 신고하라."는 제 1규칙을 가진 탸운이다. 환경의 변화로 '둠스데이' 이후, 인류에게는 신체의 변형이 오는 -눈이 더 많이 생긴다거나, 팔이 더 많이 돋아난다거나- 저주병이 생겨났다. 주인공 이교가 사는 타운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파이 한 판과 콜라를 주며 저주병에 걸린 사람을 추방시킨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막 입을 맞춘 연인이거나 하나뿐인 가족이라도, 저주병의 징후가 보이면 장로에게 알릴 것. 그렇게 지목된 감염자는 사실 확인 기간을 거쳐 추방된다. 독이 든 미트파이와 콜라 한 캔과 함께, 여전히 타운 밖에는 감염자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삶과 피를 탐하는 추악한 괴물이었다. 추방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 독이 든 파이는 추방자가 자신의 최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배려였으며, 이 규칙은 타운이 생겨난 이래로 가장 유서 깊은 전통이기도 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인류의 유구한 역사였듯이 말이다. 



타운에서 제공하는 파이 한 판에는 독이 들어 있다. 누군가는 그 파이를 만들것이다. 그 파이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두 번째 단편 <히노의 파이>에서 히노는 외지인이다. 히노는 "자신의 손으로 독이 든 파이를 만들게 된 이상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추방자들에게 선택지를 쥐여주었으니 그들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그 이후로 문지기인 백우는 히노에게 추방자들은 파이를 먹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추방자들의 마지막 음식을 만드는 히노와, 추방자를 내쫓는 역할을 하는 문지기 백우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다른' 모습을 가진 존재를 내쫓고, 그들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독이 든 음식을 주는게 과연 배려일까. 히노는 추방자들이 그 파이를 먹지 않기를 바라며, 정성스럽게 파이를 만든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도움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잖아. 백우는 혀로 바싹 마른 입술을 축였다. 최선의 대답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감염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죽음이라는 말? 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말라는 말? 최선은 없고 최악만 남은 것 같았다. 



<꿰맨 눈의 마을>의 이교는 태어날때부터 등에 눈이 하나 더 있는 '감염자'이지만 다행히도 태어날 때 눈이 감겨 있어서 정상으로 분류됐다. 의사인 아버지는 등 뒤의 눈을 꿰매버렸고, 이교는 언제나 조심하며 살아야했다. 어느 날, 이교의 친구인 램이 또 다른 친구인 제로의 신고로 추방당한다. 이교는 정말 추방당해야 했던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이교는 비행기 사고를 목격하면서 또 다른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자신의 '다름'이 더 이상 다름이 아닌 세계. 자신이 살고 있던 타운 말고는 인류가 멸망해버렸다고만 알고 있었던 이교는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감염자가 아니라 신인류인 세계를 알게 된다. 이교는 '스스로' 자신이 감염자임을 밝히고 추방을 '선택'한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니."

람이 이교를 마주 보았다. 한때 저주의 표식으로 오해했던 아름다운 세 번째 눈이 자비롭게 이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교는 람의 다섯개의 눈에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람이 말했다. 

"이제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가자."

이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개의 눈을 가진 두 사람이 황야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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