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핸드폰을 놓을 수 없는가
“야, 저번주에 말했던 여행 갈 거야?”
“제주도 가자”
“근데 나 가도 수목 이틀밖에 못 가”
“상관없어. 가자”
그렇게 하루 전날 즉흥 제주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침 9시. 겨우 일어났지만 몸은 너무나 무거워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젯밤 제주도 여행이 결정되어 새벽 2시에 편도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급하게 보내야 하는 업무 자료를 정리하여 메일로 보냈다.
그 결과, 나는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전 회사 선배에게 연락하여 선배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 점심에 방문해도 되냐고 물어본 것이다.
원래 금요일에 방문하려고 했으나, 1박 2일이라는 제주도 여행의 시간이 너무 짧아 금요일까지 연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선배 부부는 신축 프로젝트의 경계측량을 하기 위해서 사무소에 부재하여 오늘은 방문이 불가능했다.
방문이 불가능해지자 준비한 몸을 다시 침대 위에 뉘이고, 잠시의 휴식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준비를 하고 김포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핸드폰을 멀리하고 책을 하나 사서 읽으며 여유롭게 다니는 것이 목표였다.
김포 공항의 영풍문고에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사서 여행동안 읽으려 했지만, 책의 재고가 없었다.
책들을 구경했으나 다른 읽고 싶은 책도 없어 책 없이 여행을 시작했다.
3시 40분 출발 비행기.
10분 연착된 비행기는 이륙했고, 나는 이륙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고 나니 어느덧 제주도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와있던 업무 카톡 몇 개를 처리하고, 이번 여행에서는 핸드폰을 멀리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최근 나는 내 일에 대한 심한 번아웃을 겪었다. 건축설계라는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나 후회는 없었다. 다만, 건축주, 시공사, 협력업체, 현장 등과 소통하는 것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평일 아침부터 주말 저녁까지 연락은 끊임이 없었고, 내 삶은 사라졌다. 평일의 업무시간에는 전화를 쳐내느라 도면을 그리거나 다른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했고, 저녁 6시가 넘어 전화가 줄어들어야 겨우 일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 핸드폰을 비행기모드를 하고 중간중간 풀어 급한 업무들을 전화하여 해결하기도 했다.
어느새 핸드폰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가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 없고 항상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하다 보면 하루가 사라지고 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래서 강제로 핸드폰을 못 보게 하는 운동, 영화, 학원 등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숨구멍이었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핸드폰을 확인해서 연락이 와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번 겨울 연휴 동안의 여행은 오랜만에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단 3일 동안이라도 핸드폰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를 원했다.
다시 여행으로 돌아오자.
친구와 택시를 타고 서귀포시 사계항 근처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오면서 찾아놨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딱새우회, 딱새우라면, 전복죽, 카스 한 병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다 먹고 나니 배불렀다.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 겸 용머리해안 쪽과 황우치해안 쪽을 1시간 정도 산책했다.
사람이 전혀 없는 어두운 해안이었지만, 오랜만에 바닷소리를 듣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여행은 내 묵은 감정들이 쌓여있는 집에서 벗어나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저녁으로 먹은 딱새우회와 딱새우라면이 생각보다 맛이 없었더라도, 해안이 생각보다 어둡고 더러웠더라도,
나는 단지 여행을 와서 새로운 음식점에 가고 바닷가를 걸어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다.
오늘은 어딜 갈지 생각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금요일에 몇 시 비행기로 돌아갈지를 결정하고 잠에 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