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강요에 억지춘양으로 하는 공부와 자기 주도적 공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성호도 이전에 공부를 하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며칠을 못 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공부를 해야 하는 목적도, 열의도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나 스스로 공부에 대한 목표를 세운 성호는 무섭게 달라졌다.
공부를 결심한 성호의 당시 성적은 반에서 6등이었다.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며칠 전 치른 중간고사 성적이 35명 중에 29등이었던 것이다.
“우와, 내 성적 정말 가관이다!”
성호가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남의 성적표를 본 듯 혀를 찼다. 그동안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자신의 성적이 어떤 수준인지조차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성적은 나쁘지만 공부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앞으로 성적 한번 멋지게 올려보지, 뭐.”
“당연하지! 성호 너는 열정을 가지면 끝까지 노력하잖아. 게임도 전교 1등도 모자라 아시아에서 30등 안에 들었는데 공부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니? 엄마가 보기에 공부도 게임이랑 똑같아. 게임 전략을 짜듯 공부 전략을 짜자.”
“전략?”
성호가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댔다.
“게임 무턱대고 열심히 해봤자 실력이 늘디?”
“당근 아니지! 게임 잘하려면 얼마나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그냥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냐.”
성호는 게임이 얼마나 어려우며, 그 어려운 게임에서 자신이 아시아 30등 안에 든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자랑하듯 말했다.
“공부도 무턱대고 열심히만 한다고 무조건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공부 안 하던 아이가 처음부터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운행을 멈춘 기계를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운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과부하에 걸려 고장이 나고 만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공부를 시작한 성호가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천천히 예열을 하듯 공부할 것을 권했다. 처음부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시간 안에서 조금씩 양을 늘리며 몸을 공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성호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영어, 수학만큼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따라가기가 벅찬 상태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학교 수업마저 벅차다고 투덜대던 아이가 이제는 학원 수업까지 받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성호는 공부를 시작하며 운동도 함께 병행했다. 공부는 무엇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고, 높은 집중력이란 튼튼한 체력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체력을 기르는 것 또한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성호는 하루에 1시간씩 러닝머신을 탔다. 90킬로그램에 육박하던 몸은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성호가 살을 빼려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그럼 나도 해야겠는데. 우리 누가 더 열심히 살 빼나 경쟁할까?”
당시 직장 때문에 대만에 장기 체류 중이던 남편도 성호가 운동을 한다는 소식에 함께 운동에 참여했다.
“좋아요, 우리 식구 중에서 누가 살을 많이 빼는지 시합하는 거예요.”
“흥, 나도 빠질 수 없지. 오늘부터 나도 운동이다!”
“나도 나도!”
나와 둘째 성준이도 함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성호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인터넷 전화로 매일매일 서로의 운동량과 줄어든 체중을 확인하며 경쟁을 했다. 아빠가 해외에 있건 옆에 있건 관심의 차이일 뿐이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성호와 아빠는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렇게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살이 빠지고 체력이 좋아지면서 처음에는 1시간도 책상 앞에 앉아 있기 힘들어하던 성호는 차츰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공부도 핵심 전략을 세우고, 그에 맞춰 세부 전략을 짜 차근차근해야 한다. 레벨 1부터 시작하는 게임처럼 공부를 시작한 성호는 어떤 아이템을 획득해야 레벨 2로 올라갈 수 있다는 식으로 과목마다 전략을 짰다. 우선은 학교 수업에 충실했다. 그전에는 수업 시간이면 딴짓을 하느라 바빴지만, 눈에 불을 켜고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 중에 모르는 게 있으면 포스트잇에 적어 곧바로 선생님에게 물었다. 영어, 수학은 학원 수업을 들으며 착실히 부족한 기초를 채워나갔고, 인터넷 강의도 최고의 선생님들이 가르치기에 하루에 무조건 1과목씩 꼬박꼬박 수업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간절히 꿈을 꾸면 몸이 변하듯 성호는 공부 때문에 잠을 줄여도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
그렇게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뒤부터 공부를 시작한 성호는 3개월이 지난 뒤 치른 1학기 기말고사에서 무려 11 계단이나 뛰어오른 18등을 했다.
“우와, 딱 3개월 공부했는데 11등이나 올랐어, 엄마!”
성호는 자신이 받은 성적표가 믿기지 않는지 보고 또 보았다. 성호의 얼굴에는 마치 게임 레벨 1에서 순식간에 레벨 3까지 올라간 듯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엄마, 공부란 거 해보니까 정말 재밌다. 흐흐……….”
성호에게는 다음 시험에서 성적을 더 올리겠다는 야무진 목표 의식이 가득했다. 나와 남편은 성호의 공부 욕구가 불타오를 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당근을 주었다.
“반에서 3등 안에 들면 보너스 줄게. 할 수 있겠니?”
“3등? 음…… 현실적으로 당장 다음 시험에서는 힘들겠지만, 이대로 계속 공부하면 2학년 올라가서 가능할 것 같은데. 나중에 약속 안 지키면 안 돼, 알았지?”
성호는 무턱대고 3등을 받을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았다. 스스로 계획을 짜고 다음 시험까지 공부를 얼마나 하면 성적이 어느 정도 오를지 예상을 하며 공부했다.
이후로 성호의 성적 오름세는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2학기 중간고사에서 5 계단이나 오른 13등을 기록하더니, 1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에서는 반에서 2등을 했다. 채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꼴찌에서 6등이 앞에서 2등이 된 것이다!
“엄마, 나 2등 했어!”
성호가 성적표를 내밀었을 때, 나와 남편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거의 10년 동안 하위권만 맴돌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성호가 공부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거둔 놀라운 결과에! 성호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장밋빛 꿈을 꾸던 우리는 성호의 한마디에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엄마, 그런데 보너스는 얼마나 줄 생각이야?”
“아, 보너스!”
나와 남편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공부의 재미란 무엇일까?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학문 자체의 재미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르는 재미에 더욱 공부를 하게 된다. 따라서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면 공부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공부하는 아이에게 성적을 올리는 대가를 제공하는 게 좋지 않다고 말하는 교육서들도 많다. 공부의 진정한 재미를 추구해야지 달콤한 당근을 위한 공부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공부는 장기 레이스다. 따라서 지루하지 않게 순간순간 이벤트와 스토리를 아이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지루함을 떨쳐버릴 수 있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공부 전략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이다. 아이가 지루함을 느낀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집중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아이와 함께 전략을 짜라. 공부는 전략이다. 공부는 몇 년을 지루하게 이어가는 기나긴 전투와 같다. 그 전투 안에서 똑같은 레이스를 펼친다면 아이는 쉽게 지치고 만다. 전투를 계획하는 장군이 아니라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졸병이라면 전쟁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장군이 돼 전투를 계획하고, 그 전투 속에 부모가 스토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아이는 자신과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