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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May 06. 2021

스윙스 때문에 돈가스를 시킬 수가 없다

돈가스: 촉촉함과 바삭함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에 대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인 2019년의 에피소드입니다.



 가끔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 어떤 메뉴를 고를지 심사숙고를 거듭한다. 우리 팀은 부장님이 양식을 좋아하셔서 주로 회사 앞 레스토랑에 가는데, 새우가 듬뿍 들어간 오일 파스타와 부드러운 크림 파스타가 맛있다. 하지만 나의 숨은 원픽 메뉴는 바로 돈가스. 촉촉한 데미글라스 소스를 듬뿍 뿌려낸 경양식 돈가스는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환상적이다.


 그러면 돈가스를 시켜 먹으면 되지 않냐고? 허나 문제는 내가 이 메뉴만 먹겠다고 하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보는 동료 A다.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항상 같은 말을 던진다.


"저기 혹시... 돈가스 좋아하세요?"


아 진짜.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다시 메뉴판을 본다. 슬쩍 곁눈질하며 마주친 그의 눈은 여전히 느끼하다. 그리고 그의 입이 한 번 더 열린다.


“돈가스, 좋아하시나 봐요. 저랑, 돈가스 먹으러 갈래요?”


 오 신이시여. 제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을까요. 장난도 작작 쳐야지!!!!! 그는 내 관자놀이에 돋아난 핏줄을, 미간의 주름을 눈치채지 못하는지 싱글싱글거리기만 한다. 나는 애타게 직원을 부른다.


"돈가스 말고 빼쉐 파스타 주세요. 아주 맵게."


 먹고 싶었던 메뉴를 시킬 수 없는 이 서러움은 새빨간 국물이 자작한 시칠리아식 파스타로 달랜다. 야무지게 포크로 홍합을 찍어내고 매운 국물을 열심히 퍼먹으며 다짐한다.


내가 저 인간 있을 때 또 돈가스 시키나 봐라.




 2017년, 래퍼 스윙스는 돈가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그가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여자 친구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열이면 아홉은 넘어온다는 의외의 작업 멘트는 바로 "돈가스 좋아하세요?"였다.


 돈가스 안 좋아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심지어 베지테리언도 돈가스를 좋아하는 명언을 남겼다. 깨알 같은 팁으로 서비스 우동이 나오면 "죄송합니다 저는 소중한 여자에게 이런 거 안 먹여요. 냉모밀 하나 주세요."라는 추가 공략법과 함께 말이다.


 그 이후로, 일명 '돈까스윙스'가 된 그는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행어를 전파했다. 덕분에 어디 가서 돈가스를 시키면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 누군가는 이 드립을 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는 돼지고기를 더 맛있어지는 기름에 튀겼으니... 돈가스를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돈가스를 좋아한다. 하지만 저 말만 들으면 갑자기 돈가스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이성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돈가스를 좋아하지만 돈가스를 시킬 수 없다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된 기분이다. 열에 아홉이 넘어온다고? 나는 나머지 하나인가 보다. 돈가스는 나중에 혼자 먹으러 가야겠다.



 돈가스는 주로 돼지고기 안심이나 등심을 저며서 튀겨낸 음식으로, 양식 전문점뿐만 아니라 분식점, 심지어 추어탕 집에 사이드 메뉴로 존재할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냉동 제품을 튀겨내면 준비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학생식당이나 구내식당에서도 단골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돈가스의 유래는 커틀릿(cutlet)에서 찾을 수 있다. 주로 소고기에 밀가루를 입혀 버터에 지져내는 음식인데 일본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이 커틀릿을 활용한 돈가스를 만들었다. 소고기보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돼지고기를 사용하였고, 밀가루-달걀물-빵가루를 차례대로 입혀서 튀기는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덴뿌라(튀김) 조리법을 응용했다.


 돈가스는 흔히 경양식 돈가스라고 불리는 한국식 돈가스와 일본식 돈가스로 나뉘는데, 그 차이는 굉장히 크다. 일단 한국식 돈가스는 데미글라스 소스를 기반으로 한 묽은 갈색 소스를 돈가스에 뿌려내며, 고기는 두드리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얇고 넓게 펴진 느낌이다. 가니쉬로는 마카로니 샐러드나 피클,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먹으며 동그랗게 스쿱으로 떠낸 밥이나 김치, 단무지가 나올 때도 있다.


 반면에 일본식 돈가스는 두께가 도톰하고 소스는 따로 나온다. 찍어먹어도 되고 뿌려먹어도 되지만 경양식 돈가스에 비하면 그 양이 훨씬 적다. 깨를 갈아 넣는 경우도 있고 소스가 아닌 그냥 소금에 찍어먹기도 한다.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잘게 채 썬 양배추(돈가스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와 쌀밥, 그리고 미소장국을 함께 먹는다. 밥과 국에 돈가스가 반찬인 정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돈가스는 그 자체로도 다양한 속 재료를 넣은 치즈 돈가스, 고구마 돈가스 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기본 조리법 외에도 밥 위에 덮밥처럼 올라간 가츠동, 돈가스를 김치찌개에 담가 전골처럼 만든 돈가스 김치 나베, 돈가스를 속 재료로 넣은 돈가스 김밥, 돈가스 샌드위치 등 다양한 요리로 변형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식 경양식 돈가스(2인분)

<재료>

- 돈가스용으로 자른 등심 700g

- 달걀 2개

- 밀가루 한 컵

- 빵가루 두 컵

- 다진 마늘 1/2큰술(고기 밑간용) + 1큰술(소스용)

- 생강 1작은술

- 소금, 후추 약간

- 버터 3큰술

- 밀가루 3큰술

- 샐러리 1/3줄

- 양파 1/2개

- 당근 1/4개

- 소고기 육수 250ml

- 우스터소스 3큰술

- 간장 1큰술

- 케첩 2큰술

- 적포도주 약간


<만드는 법>

- 도마나 비닐 위에 고기를 펼치고 미트 해머나 칼등으로 두드려 고기를 연하게 펴준다.

- 다진 마늘, 생강,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주고 30분 이상 재운다.

-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 순으로 튀김옷을 충분히 입힌다.

- 냄비에 식용유를 달군 후 튀김옷을 넣었을 때 바로 떠오르면 돈가스를 넣어준다.

- 색깔이 노릇한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튀겨낸 후 기름을 빼준다.

- 샐러리, 양파, 당근, 마늘은 잘게 다지거나 채 썰어 준비한다.

- 소스 팬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조금씩 넣어가며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준다.

- 짙은 갈색이 되면 야채를 넣고 적포도주를 뿌려 볶다가 케첩과 우스터소스, 간장을 넣어준다.

- 소스에 물을 한 컵 넣고 야채가 뭉근하게 익을 때까지 소스를 졸인다.

- 접시에 돈가스를 올리고 소스를 듬뿍 얹어준 뒤 마카로니 샐러드, 단무지 등과 함께 낸다.


 돈가스는 고기에 손이 많이 간다기보다는 소스를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두면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소스는 냉장 보관하고 최대한 빨리 먹는 것이 좋다. 돈가스는 한 번만 튀겨내도 좋지만 두 번 튀겨낸다면 훨씬 바삭하게 즐길 수 있다. 만약 귀찮다면? 분명 집 근처에 돈가스를 파는 곳이 한 군데 이상은 있을 것이다. 당장 출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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