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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May 17. 2021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서평: 일간 이슬아 수필집


 그리 넓지 않은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주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중 너덜너덜해지는 일의 주인공이 되면 말로 먹고사는 직업임에도 입을 닫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게 딱 어제였다. 사실 그저께부터였던 건지도 모른다.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오후, 갑자기 앞자리의 직장동료가 베개처럼 보이는 책을 한 권 들이밀었다. 점심시간을 쪼개 서점에 다녀오는 길인지 책상에는 책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책을 나에게 준 것 같았다. 떨떠름하게 받아 든 내 표정을 읽었는지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 요즘 핫한 작가인데, 지난번에 얘기해준 그 사람 있잖아요. 매일 자기가 쓴 글을 보낸다는 사람.

  - 아아, 네.

  - 좋아할 것 같은 스타일이라서, 나는 다른 책 많이 있으니까 먼저 읽어요.

  - 감사합니다.


 타인의 배려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어온다. 어쩌면 이 사람은 앞자리에 떠있는 내 먹구름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높은 파티션 너머로 눈도 보이지 않고 까만 머리통만 보였을 텐데도, 그게 느껴지나 보다. 책에 온도가 있을 리 없었는데도 따뜻하고 묵직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첫 장을 열었다.


 커다란 진주 귀걸이를 한 여자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그 아래의 이름, 이슬아 그리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거라곤 오얏 이, 밖에 없는 한자 세 개, 괄호와 1992년, 물결. 인디밴드가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의 모습에 한 줌의 흥미를 가지고 다음 장을 넘겼다. 그녀는 한 편에 500원을 받고 글을 쓴다고 했다. 한 달에 스무 편의 글을 쓰고, 구독료는 만 원. 이름하여 ‘일간 이슬아’이다. 이 책은 2018년에 쓰인 일간 이슬아의 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매일 밤 12시라는 마감 시간을 지키며 사는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에게도 마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매일매일은 아니다. 웹툰 작가가 세이브 원고를 그려놓는 것처럼 미리 지시를 받고,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업무를 한다. 그리고 그 마감기한은 주로 며칠이 주어진다. 내가 매일 밤 열두 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면 아마 벌써 과로사로 죽지 않았을까 싶다. 형편없는 체력을 가진 직장인의 말로랄까. 그래서 야근이 많지 않은 이 직장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도 어쨌든 다 혼자지, 그치? 나는 혼자가 너무 싫은 나머지 괜히 그렇게 말한다.
.... 그 몸의 센 포옹을 감당하다가 숨이 막혀서 나는 갑자기 조금 혼자이고 싶어져버린다. 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마음의 균형을 찾도록 도와준다. 순식간에 혼자여도 괜찮다고 믿게 된 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얘랑 먹을 아점 메뉴를 고민한다.
                                                                                                - 일간 이슬아 수필집 '오늘의 침실 ' 中


 첫 번째 원고인 ‘오늘의 침실’을 앉은자리에서 꼼꼼하게 읽고 난 후, 나는 그녀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했다. 나도 읽고 싶어서,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이었다. 뭔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꾸미고 싶어 하는 나의 문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나만 읽고 다른 거 해야지, 라는 마음은 순식간에 다음 페이지, 또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나 목차를 다시 훑으며, 아껴 읽고 싶기도 하고 빨리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과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풀어놓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이렇게나 좋은 글을 읽게 되어 기쁘면서도, 나는 절망했다.


 반한 사람이랑 밥을 먹을 때면 젓가락질을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것만 같다.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는 일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뭔가를 자꾸 흘리고 묻히느라 정신이 아찔해지고 그러다 보면 체하게 된다. 나를 긴장하게 하는 사람이랑은 되도록 밥 약속을 피하고 커피 약속을 잡아야 한다.
.... 걔랑 그런 얘길 한참 하고 싶었다. 각자의 몸을 정면으로 통과한 이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말하느라 막차를 놓치고 싶었다.                                                                       
                                                                                                - 일간 이슬아 수필집 '점잖은 사이 ' 中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아직 글을 적게 써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애초에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인가.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나는 다시 말 한마디 하고 싶지 않은 나로 돌아와 있었다. 타인의 배려와 호의에 반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구나 나는. 이러라고 준 책이 아닐 텐데. 불과 몇 분 전 글을 읽으며 기뻐했던 나를 떠올리며 욕심을 덜어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글을 잘 쓰고말고를 따지지 말고 일단 오롯이 이 잘 쓴 글을 음미하자. 주저하던 손끝으로 다시 책장을 열고, 나에 대한 미움이 아닌 촘촘하고 섬세하게 짜인 그녀의 글을 씹어 삼킨다. 문장 하나하나 뜯어보며 좋은 구절은 옮겨 적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다시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진다. 형편없고 초라해도 좋으니 그저 한 글자라도 더 써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일 줄도 알게 된다.


뭐라도 좋으니, 쓰자.




p.s. 요즘 일간 이슬아 늦봄호가 연재중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인스타그램 @sullalee를 참고해주세요. (광고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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