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올해도 11월이다. 11월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달이기도 하다. 벌써 9년째 구남친과 살고 있다. 그 사이 나의 찬란했던 30대는 출산과 육아로 훌쩍 건너뛰어 어느덧 준비도 없이 마흔 하나 아줌마가 되었다. 그래도 결혼기념일이 있는 11월에는 다른 건 못해도 여행은 가려고 했다. 부산을 비롯, 여수, 남해, 고성, 군산 등등을 포함하여 제주도도 결혼해 살며 두 번이나 다녀왔건만 유독 멀게 느껴졌던 곳이 있었다. 바로 거제도. 거제는 스물한 살 즈음 가족들과 남쪽 일주 여행을 하자면서 다녀왔던 곳이었다. 따뜻한 날씨와 더불어 해안가에 대형 선박들이 줄지어 있던 모습이 꽤 이국적이었던 그곳을 언젠가는 꼭 다시 와야지 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 20년 만에 거제에 갔다.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내 서른 살을 기억해 준 스페인을 거제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것도 11년 만에.
기억에 남는 여행은 다시 보기와 같다. 아무리 재생해도 질리지 않고, 인상 깊은 장면은 계속 보아도 좋은 것처럼. 비록 세월이 흘러 그 빛바랜 기억들은 희미해져 왜곡될 지라도, 그때 느낀 그 감정과 감동은 오랫동안 남는다. 한동안 그 계절이 다가오면 그랬고, 가끔 들춰보는 사진을 보면서도 그랬고,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 여행이 나에겐 그랬다. 다시 보고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이야기를 나는 2011년 10월에 떠난 스페인에서 만났다.
20대 때 취업을 앞두고, 친구 둘과 작심하고 떠났던 한 달간의 배낭여행. 다녀와서는 줄 곧 그 한 달의 이야기가 곧 우리가 되었고, 그 에너지로 20대를 살았다. 그렇게 그때 같이 갔던 친구 하나와 우리 이제 서른 살이 되면 또 떠나자고, 그때 못 갔었던 스페인을 꼭 가자며 서른살이 되면 그 에너지로 또 살자고 했었다. 그런데 준비하는 도중 친구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으시면서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어쩌다 혼자 가는 여행이 되었다. 친구 아버지와 친구가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앞이 정말 캄캄했다. 이미 비행기 표는 끈어놓은 상태. 어쩌다, 나 혼자?! 그것도 해외를?!.. 열흘 동안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영어도 못하는데 과연 재미있을까... 이러다 미아되면 어쩌지? 온갖 불안과 걱정으로 시간은 흐르고 출국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겁도 많고 의심도 많았던 나는, 두려움을 반으로 나누기로 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며 절반은 내가 안고 가기로 하고, 절반은 나 같은 사람들과 나누기로. 바로 인터넷 카페에서 여행 메이트를 구하기로 한 것이다. 배낭여행 카페에 용기 내어 글을 올렸다. 다행히 몇몇 사람들에게서 쪽지가 왔다. 일정이 맞는 사람들과 만날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했다. 그 중에서도 나와 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똑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나이도 동갑에 둘 다 맏이. 그런데 세상에나, 그 먼 거제에서 온단다. 대단하다 싶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면, 남자였다. 여자친구면 같이 쇼핑도 하고 사진도 요리조리 예쁘게 찍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할 텐데. 다시 한번 같이 못 가게 된 친구가 생각났지만, 원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구 탓도 할 수 없었다. 근데 뭐 그래, 이미 시간은 다가오고 있고, 까짓꺼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때~ 오히려 여행 메이트가 남자라면 어떤 면에선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낯선 이들과 오픈마인드로 지내다 오리라. 이번 여행은 자유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 그렇게 홀로 카타르 도하를 지나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리 예약해 두었던 민박에 일단 체크인 후 도착하자마자 배낭만 휙 던져놓고 여행 메이트가 먼저 가 기다리고 있다는 레티로 공원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체력이다. 좀 피곤은 했지만 살짝 상기된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 시내에 도착했다. 레티로 공원의 지도를 따라가며 겨우 찾아가 만났다. 아 근데 아뿔싸...공항에서와는 다른 느낌?! 이번 여행 험난하겠다 싶었다. 경상도 남자의 그 특유의 무뚝뚝한 아우라라고나 할까. 그 아우라를 혼자 다 감당하려니 어색한 건 둘째치고 어려웠다.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며 시내까지 갔을까?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고 금방 잊어버렸다. 이미 그 때 시차때문에 멍한 각성상태였는데다가, 혈혈단신 아는 사람은 이 친구뿐이오(나보다 일단 몇 시간 먼저 마드리드 땅을 밟았으니), 마드리드의 저녁은 생각보다 길었고, 배는 고팠다.
반면, 내 처지를 절대 알리 없는 마드리드의 밤거리는 축제였다. 사람들은 활기가 넘쳤고, 화려했다. 골목골목에는 그 종류를 알 수 없는 다양한 타파스들을 유리 너머로 내 건 식당들의 향긋한 음식 냄새와 담배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그 사이를 메운 젊은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삼오오 모여 노천카페든, 길거리 어느 곳에서든 서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자유분방함들이 다소 생경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낯섬의 경계를 조금씩 풀었다. 샹그리아 한잔에 조금씩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반가운 마음이 생겼다. 내가 이 스페인에 와 있다구!!
마드리드에서의 둘째 날은 날이 참 맑았다. 그날 나의 세 번째 여행 메이트를 만났다. 경상도 사나이가 불쑥 자신의 룸메이트라며 데리고 나왔는데 꽤 유쾌한 분이었다. 나는 이후에 그 오빠를 혼자 샛님오빠라고 칭했다. 서울 사람이었던 그 오빠는 이 친구와 사뭇 다른,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겼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오빠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여행길은 진즉 갈라섰을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의 곳곳을 이동하면서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톨레도의 성곽길을 걸으며, 세비야의 한 노천 타파스 식당에서, 케이블카 대신 기어코 걸어올라 간 몬주익 언덕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불빛 삼아 내려가던 알바이신 지구 달동네 골목길에서 왜 하필 지금, 스페인이었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부터, 어느 날에는 서로의 연애관과 가치관, 앞으로의 계획 등 아주 개인적인 얘기까지 넘나들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셋이서 수다를 떨었었다. 때로는 진지했고 때로는 가벼웠다. 만약에 이 둘을 다른 공간,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진심으로 밀도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직 스페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순간을 아끼고 담으려 했던 것 같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주어진 조건은 달랐지만 모두 다 삼십 대 초반 직장인이었기에 고민의 무게는 비슷했다. 그러니 다들 이 여행을 얼마나 준비하고 고대하며 왔을까. 같이 다니다 보니 각자 세웠던 일정이 어그러지기도 했고, 길을 잃어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고, 서로 소소하게 양보해야 하는 일도 잦았지만 누구 하나 짜증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없었다. 중간에 미리 예약해두었던 일정이 있어 다른 도시로 찢어졌다가도 다시 만나거나, 먼저 출국하는 사람을 위해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곁을 내어 같이 배웅해주기도 했다. 이런 마음 씀씀이들 덕분에 다른 메이트들과는 달리 끝까지 함께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른 살의 스페인은 그렇게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 이후로 플라멩코 공연을 찾아보기도 하고,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학원을 알아보기도 했다가, 마트에서 스페인산 오렌지를 보면 꼭 사서 먹어보곤 했다. 톨레도에서의 저녁, 내 생일을 자축하자며 갔던 한인식당의 하몽과 올리브 절임은 정말 맛이 좋았었는데.. 사장님이 어제 만났다던 남녀가 톨레도까지 와서늦은저녁을 먹으러 왔다하니 뭔가 흐뭇한 눈길로 요리도 더 주시고 했었는데,하지만 그런 시선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을만큼 그곳에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있었다.
차로 4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통영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건너 간 거제는 참 따뜻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조선소의 풍경은 아이와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편은 출발하기 며칠전날, 나에게 조선소 견학을 신청했는데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예약한 사람이 10명이 안되어 견학을 못한다고 했다. 생각도 못했던 조선소견학을 나는 할 수 없지 괜찮다고, 조선소 꼭 안 가봐도 된다며 무심한 위로를 했었다. 하지만 아이와 교육적으로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남편은 그 야심찬 계획이 뜻대로 안되자 꽤아쉬워 했다.그러고는 도착한날 밤 숙소에서 멀지 않은 옥포공원에서 아이에게 불 켜진 조선소를 보여주었다. 그런 아이와 신랑을 보며 짐만 겨우 챙겨 몸만 싣고 온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언젠가부터는 여행지를 정하는 것도 계획을 짜는 것도, 숙소를 잡는 것도 모두 다 일처럼 해치우는 내가 참 많이도 변했다 싶었다. 여행을 가면 계획하는 게 좋아서 설레어 하며 밤잠을 설치곤 했었는데 말이다. 배낭여행을 갈 때도 수첩 하나 사서 거기에 비행기 표부터, 도시의 지도, 역사, 보고 싶은 곳, 맛집, 숙소 정보들을 스크랩해서 한 손에 촥하고 준비를 해 갔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날씨를 알 수 없어 외투를 골고루 챙겨가길 잘했다며 거제에서의 이튿날을 맞이했다.배를 타고 외도 투어를 할 예정이었는데 풍랑주의보로 취소가 되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럼 뭐하지? 문득,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뼛 속까지 경상도 아우라로 나를 쫄게 했던 그 친구. 여행 이후 서로 안부도 묻고 결혼 선물도 챙겨가며 생사확인은 했었는데,이제 그러기엔 너무 옛날이 되어버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훌쩍 가버린걸까. 마음은 안 그런데, 시간이 야속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연락해볼까? 아니, 진짜 우리 지금 몇 년만인 건데?..
잠시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먼 타지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아낌없이 써도 괜찮았던 그 때, 낯선 사람들과도 잘 웃고 툭 터놓고 이야기도 잘도 해댔던 그 때, 그리고 그런 내가 참 예뻤다는 걸몰랐던 그 때, 그런 나와 잠시 같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오후 4시, 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저 멀리서낯설지 않은 덩치가 나온다. 11년 만이지만 딱 봐도 알겠네. 그 고글선글라스를 하고 레티로 공원에서 유유자적하던 그 아우라. 나는 어색해지지 않으려 일부러 손을 번쩍 들어올려 더 마구 흔들었다. 아니, 근데 왜 어색하지 않은 거야.
이렇게 하기는 자기도 처음이라면서 선박을 소개하는 자료까지 챙겨 온 친구는 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허리를 숙여 아이의 이름도 묻고 악수를 청한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반갑게 받은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어줘서 미안도 했다.
조선소를 둘러보는데 한시간 남짓의 시간. 그 친구는 잠시 다시 스페인에 온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조선소를 둘러보는 내내 나도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렇게 만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조선소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중에도 간간히 스페인에서의 여정들을 툭툭 던지곤 했다. 톨레도도 그라나다도 모두가 다 기억에 남고 정말 즐겁고 좋았었다고. 그때가 내 전성기였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 친구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 친구와 헤어지며 돌아가는 길. 아이와 남편은 조선소풍경을 직관했다며 좋아했고, 나도 한시간을 돌아도 넉넉했던 조선소의 스케일에 놀랐다. 그리고 그 친구 덕분에 이제는 조금씩 가물가물해져 갔던 스페인에서의 좋은 기억들이떠올라 오랫만에 그때의 추억들을 다시 들췄다.
아마도 처음과 끝이 있는 게 여행이니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음을 아니까. 각자의 여행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나, 시간, 공간으로 돌아갈 것을 알아서일까. 그래서 여행에서의 만남과 그 관계는 유연하지만 짙고세월이 흘러도 그 순간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나 보다.
여행은 그리움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누군가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에 함께 거기 있었음에 고맙고, 감사하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앞으로 더 근사하게 나이들어가리라는 바램을 이거울에 비춰보기로 한다.
이제는 다시 보기 리스트에 또 하나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이 이야기 또한 앞으로 무한 재생을 해도 질리지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