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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인 Mar 22. 2022

동양인 TCK의 정체성

해외살이가 문화적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

고향이 어디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 세가지 중 하나로 답할 것이다. 급하다면 아마 (마음 깊은 곳에 찝찝함을 느끼며) 서울이라고 답할 것이다.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면 나는 비록 총 5년밖에 못 살아봤어서 스스로 내가 ‘애매한’ 서울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세계 이곳저곳에서 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20년 남짓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총 7번의 이사를 하며 지냈다는 이런 장황한 설명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다 말이 길어지고 내가 TMI를 남발하는게 아닌가 걱정하면서까지 말이다. 아니면, “많이… 옮겨다녔어요.” 이 말 한마디로 나는 내 지리적 고향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의 기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설명까지 완성한다는 걸 느낀다.


최근에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내 인생의 그런 다소 정신 없는 시기는 막을 내렸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안 가 바로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나라에 정착해서 이민자로서 사는 게 아니라, 2-3년을 살다 적응이 될 때 즈음 다시 또 다른 나라로 옮겨 가는 인생을 살아왔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문화와 해외의 문화, 이 두개의 문화 외에 자신들만의 세번째 문화를 형성한다고 하여 Third Culture Kid, 줄여서 TCK라고 칭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Ruth Hill Useem이 1950년대에 처음 발명한 용어라고 한다). 이러한 TCK들은 본인이 산 나라의 문화에 100% 속해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어느 정도 여러 곳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딜 가든 TCK는 일종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같은 TCK 간에 깊은 유대감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이에 나도 공감했다. 나는 가끔 “남들은 날 절대 이해 못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이에 타당한 이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난 한국에 갔을 때도, 외국에 있을 때도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 든 적이 별로 없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 즉 다른 TCK들을 만났을 때만 내 유년기 및 청소년기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진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신기한 건 이러한 유대감을 느끼려면 그 상대방이 거의 항상 동양인이여야만 했다. “백인 애들은 만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우리가 초대받지 못하는 파티?) 같은 류의 질문은 내가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 친구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주제다. ‘백인 애들'을 이해하지만 그들과 어울릴 수는 없는 이런 ‘우리들’의 일종의 리그에서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다고 백인이 아니라고 무조건 유대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서양인 정서”가 관건이다. 학교 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공유하는 비슷한 경험적, 물질적 요소들도 좋은 주제가 된다. “너도 미국 급식 싫었지?” 같은 이야기처럼 말이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미국의 공립 학교의 급식은 돈내고 먹기가 참 아까웠다. 햄버거가 꼴랑 패티 한장, 치즈 한장이라니! “중국식 볶음밥”인데 중국인들은 처음 먹어보는 끔찍한 맛이라니! 트라우마틱하다.) 물론 비슷한 경험을 한 한국인과 느끼는 유대감은 표현할 수 없이 크다. 그것이 내가 한국 대학으로 온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외국에 있을 때에는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말이 국제학교지, 사실은 그냥 외국인들이 몇명 있는 미국 학교나 다름없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다니던 국제학교도 American International School (미국 국제 학교)이었다. 어찌됐든 이건 내 경험일 뿐이고 다른 나라와 도시의 국제학교는 또 다른 성향을 띄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에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미국, 캐나다, 아니면 영국 국제 학교인 경우로 영어가 사용되는 학교가 많다. 그래서 동양인 TCK는 외국에 있을 때 자신의 동양 정서와 낯선 서양 정서의 충돌로 인해 불편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Third Culture Kids: Growing Up Among Worlds 라는 TCK에 대한 전문 서적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반면 미국인 TCK는 국제학교가 비교적 더 편하고, 오히려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더 불편하다고도 한다. 이건 왜 그런 것일까. 전통적으로 TCK라고 할 때 학자들은 동양인 TCK의 경험보다 서양인 TCK의 경험을 더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청소년들의 “문화"는 학교 생활과 경험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유하는 특정 학교 시스템, 학교 문화 등의 경험이 축적되어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문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자면, 동양인 TCK의 학교에서의 경험이 동양 본국에서의 학교 경험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본국에서 정체성의 혼동 혹은 내국인들과의 깊은 친밀감을 형성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이 통째로 없고, 원래 3년이어야 하는 중학교 시절은 학기 차이와 당시의 특수상황으로 인해 절반인 1년반으로 단축되었다. 그 대신 미국 공립 학교와 국제학교를 다녔다. 한국에서 자랐더라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3년을 다닌 후, 수능 시험을 치루었을 이런 공동의 (collective) 청소년기 ‘경험'이 나에게는 완전히 없다. 대신 나는 한국인 가족과 문화에서 자라 형성된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닌 상태에서, 내게는 일반적이지만 타문화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들과 가치관에 끝없이 부딪히는 ‘공동의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의 공동의 경험 (collective experience)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교복, 급식, 학교, 성적, 친구, 학원, 수능 등등이 있다. 한국인 TCK의 공동의 경험 (collective experience)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양인의 개방성에 대한 일종의 쇼크와 시간에 따른 적응, 사회적으로 일반적이라 통용되는 행동이나 말들에 대해 배우는 과정,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공감대를 통해서 특히나 동양인 TCK들은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내 정체성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melting pot" -- 용광로 -- 라는 말처럼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진 혼합물이 아니다. 문화적 혼합물이란 개념이 흥미롭게 들릴 순 있어도, 사실 현실에서 멜팅팟은 흔치 않다. 게임으로 비유해보자면 나라는 사람은 한국인,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이 기본 설정 캐릭터다. 그곳에서 시작해 여러가지 다른 옷들과 장치를 부착해나가며 (여러 경험을 해가며) 겉모습이 조금씩 바뀌어갈 뿐이다.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로부터 나는 확장한다.


따라서 TCK라고 해서 꼭 같은 나라에 살아야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아니며, 종류가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TCK라는 단어 하나로 단순화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방금 말했듯이 난 가장 대표적으로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문화적 정서 차이의 요인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는 비교문화심리학이라는 특정 심리학의 하위분야에서 다루어지며, 대표적인 연구자로 “생각의 지도” Geography of Thought (2003)의 저자인 리처드 니스벳과 함께 키타야마 등이 있다. 이런 문화심리학의 가장 큰 유산이자 발견이 바로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지사고 차이다. 동양인은 어떠한 큰 그림, 배경, 관계를 중점으로, 서양인은 독립적인 개체를 중점으로 세상을 해석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을 나는 실제로 경험한 뒤에 우연히 이 책을 읽고나서 동양,서양 차이의 정확한 뿌리에 대한 설명을 접할 수 있었다.

심리학 연구는 흥미롭지만, 개개인의 특정한 경험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하다 느낀다. 나는 개개인 TCK의 경험 수집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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