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까페에 맡겨놓고 가려다가 사기꾼으로 몰린 선배님..
현직에 계실 때는 은행 지점장으로 은퇴하셨는데..
노인이라고 선입견 가지신 카페 사장님이
박대하셨다가 손님인 줄 모르고 실수했다며 고개를 푹 숙인다.
엄청 기분 나빴을 텐데
오히려 카페 주인의 미안해함을 덮어주시며
웃고 가셨다.
나이 든다는 건
감정을 잘 다스리는 거라는 걸 배우고도
나는 또 금새 잊어버리고 버럭 하겠지.
보해양조에서 만든 12년 산.
알코올 도수 18도. 재료ㅡ정제수. 설탕. 액상과당.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 국산 매실원액 등이 들어있는
3리터짜리로 금색 도르래(?)에 고정되어 있다.
매취 순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오버랩된다.
고기먹다가 잘 체하는 나에게 아버지 엄마는 집에서 담근 매실주를 한잔씩 주시며 술이 다 나쁜 건 아니라고 하셨다. 신기하게 불편한 속이 가라앉았던 경험때문에 소화제 대신 항상 매실주를 달라고 해서 마신 기억이 난다.
가끔은 당신 술잔에 삶의 고뇌를 얹기도 하고 퇴근길엔 술냄새를 풍기며 양손 가득 빵 봉지를 들고 내 이름을 부르며 대문을 발로 차셨던 아버지..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은 주로 맥주나 소맥을 먹었다. 지금이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애주가가 되었지만 당시엔 아버지가 주던 매실주만 술인 줄 알았다. 술자리에서 잔은 안 비우고 안주만 축내는 나는 당연히 친구들의 핀잔을 받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단맛과 쓴맛이 농익듯이 나의 술량도 제법 늘었다. 이제는 맛을 알며 분위기를 타는 애주가가 되었는데 점점 함께 마실 친구의 숫자는 적어졌다.
혼자 있는걸 두려워 말고 즐기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그렇게 내 시간을 누리려고 노력한다. 욕실 청소를 하고 캔맥 하나 따서 시원하게 들이키고 난 뒤의 청량감과 하루를 마무리하고 책장을 넘기며 마시는 레드 와인은 꿀맛이다.
적절히 음미하는 술 한잔의 값을 현재로선 그 무엇으로도 매길 수가 없다. 아버지 엄마가 주신 매실주처럼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주고 기분을 up 시켜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