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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혀니 Nov 12. 2020

02. 야들야들 삼겹살,

그림의 떡

2020.11.12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지 않은 역사적인 날.


고기들 중 단연 으뜸을 고르자면, 역시 돼지고기, 그중에 삼겹살 아닐까. 삽겹살의 지방과 살코기의 조합은 정말 독보적이다. 삼겹살을 먹는 다양한 방식 중 나는 삼겹살 위에 와사비 조금, 쌈장 약간, 마늘 하나 얹고, 심심하면 파채까지 넣어서 시원한 무쌈에 싸 먹는 걸 좋아한다. 쌈은 너무 커서도, 너무 작아서도 안된다. 딱 적당한 크기로 싸서 입안 가득 삼겹살 쌈의 완벽한 조화를 느낄 때 정말 행복하다.


오늘 회사에서 대선배님이 소모임으로 밥을 먹고 가자고 하셨다. '다이어트 중인데.....'하고 가장 먼저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의 선배들과의 저녁식사인데 빠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모임 장소는 돼지 고깃집!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먹어도 되는 부위가 뭐라고 하셨더라... 어.. 일단 삼겹살은 아니다. 목살이다.


목살과 항정살



돼지 한 근을 시키면 세 가지 부위가 나온다. 목살, 항정살, 그리고 삼겹살! 먼저 항정살과 목살을 1차로 구워주신다. 마늘과 버섯, 떡도 같이 굽는다.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갈 때쯤 가위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자르면 익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항정살이 먼저 익었는데, 선생님의 말을 잘 듣기로 결심했던 나는 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항정살을 눈으로만 보기로 결심하고 목살을 기다린다. 살코기가 두꺼워서 그런가 한참 더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목살을 입에 넣었는데, 와! 목살도 맛있다.


그동안 삼겹살이라는 그늘에 가려져왔던 목살은 내게 찬밥 신세였다. 목살 한점 먹느니 차라리 삼겹살 한점 더 먹겠다는 심정이었어서 목살을 양껏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오늘 드디어 제대로 먹어봤다. 퍽퍽해보이지만 부드럽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단백질도 많다. 어제 저녁으로 먹은 닭가슴살과 비교해본다면 목살은 나에게 그야말로 만찬이다.


최강자 삼겹살



주인공은 역시나 마지막에 등장한다. 항정살과 목살이 절반 정도 사라졌을 때, 삼겹살을 구워주시기 시작한다. 목살도 충분히 맛있다고 생각하며 먹고 있는데 지글지글 육즙이 나오며 구워지는 삼겹살을 보자 또 다시 목살이 하찮게 느껴진다. 세상에!


"아이고, 우리 막내 불행해 보인다. 하나만 먹어라."


선배님들이 동정의 눈빛을 보내시지만, 다행히 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딱 목살, 육회만 먹고 만족하기로 한다. 그동안 나의 잘먹는 모습을 좋아하셨던 선배님들은 갑작스러운 다이어트를 싫어하셨다.


본격적으로 식단관리가 시작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포기하고 있다. 아침 업무를 시작하며 마시던 달달한 돌체 라떼, 마감시간 힘이 떨어질 때쯤 먹던 ABC 초콜릿,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 삼겹살까지. 운동을 시작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약간의 나의 행복을 잃은 느낌이다. 이럴 땐 역시 명언 하나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얻게 될 것을 생각해보면 뭐 이정도야 잃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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