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를 먹다 문득 깨달은 결실과 결과의 차이
요즘 단어를 검색하는 일에 재미가 들렸다. 국어사전 속 의미를 확인하고 한자를 한 개씩 누른다. 의미의 기원을 알기 위함이다. 어제는 가족과 가정의 차이를 알았다. 둘 다 ‘집가’를 사용한다. 하지만 가족은 겨레족이 뒤에 옴으로써 혈연관계의 사람을 의미한다면 가'정'은 뜰정 자로 같은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뜻한다. 막연히 미래의 가족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집에서 식사하고 잠자는 모습을 떠올렸다. 집 밖에서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혹시 나는 가족이 아닌 집을 바랐던 것이었나. 모호한 인생은 모호한 단어들로 짜여있다. 인생의 해상도를 높여야겠다 다짐하며 포크를 들었다. 케이크 위에 얹어진 무화과의 뜻도 궁금해졌다.
무화과는 없을무, 꽃화, 열매과 로 꽃이 없는 열매를 뜻했다. 은화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사실 꽃이 열매 안에 숨어져 있다고 한다. 눈에 띄지 않을 뿐 무화과가 꽃 자체였다니. 난 커피에 꽃 한 송이를 곁들였던 셈이다. 이런 무화과의 속 사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꽃 없는 열매로 1000년이 넘는 세월 간 불린 무화과가 딱했다. 또 꽃말이 눈에 들어왔다. ‘풍요로운 결실 ’ 모든 꽃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이 존재한다. 왜 하필 무화과에게 이런 꽃말을 지어주었을까.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다른 꽃들은 벌과 나비들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꽃가루를 퍼뜨린다. 허나 무화과는 꽃이 열매 안에 숨어있다. 열매 끝부분의 구멍을 통과해야만 꽃가루에 닿을 수 있다. 때문에 길이가 2㎜가 채 안 되는 무화과 좀벌만이 번식을 가능케 한다.
구멍이 워낙 좁다 보니 파고드는 과정에서 날개가 찢기고 몸통의 상당 부분이 터진다고 한다. 1억 년 간 지속해 온 약속을 수행하면 좀벌은 열매 안에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생을 마감한다. 이런 엄숙한 일대기를 가진 무화과를 가벼운 포크질로 입에 넣어도 되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결실과 결과의 차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결과는 결말의 상태로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였는지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현재 상태에 중점을 둔다면 결실은 과정을 헤아린다. 꽃말이 ‘풍요로운 결과’라면 무화과보다 대추나무가 어울렸을 것이었다. 대추나무는 열매를 턴다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알이 나무에 맺힌다. 하지만 풍요로운 결실이라면 무화과가 주인이 되는 것이 마땅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의 미숙한 점들이 결실의 관점에서는 유리하단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근래 팔 굽혀 펴기 한 개를 목표로 운동을 하는 중이다. 결과로써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결실의 관점에서 한 개는 대단할 수 있다. 특히 운동 신경이 대단치 못할수록 팔 굽혀 펴기 하나의 결실은 값지다. 결실은 타고난 것보다 타고나지 않은 것들에 가산점이 있는 것 같았다. 인생의 공평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꽃 없이 열매 맺는 게 그게 바로 무화과 아닌가
이것 봐 열매 안에서 속꽃 피는 게 무화과 아닌가
김지하 - 무화과 中 -
정말 어떠한가
나의 결핍은 어떤 열매를 맺어낼 것인가
어떤 속꽃을 피워낼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