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볼때기살을 먹다가 문득 든 생각
남자친구와 초밥 세 판을 해치우고 배를 두드리는데 직원분이 테이블 가운데로 접시 하나를 밀어주셨다. 서비스로 나온 선홍색의 연어 머리 구이였다. “ 볼때기 살 먹어” 친구는 가시에서 살을 발라내 하얀 살점을 앞접시에 올려줬다. “뭔때기 살?” 듣자 하니 볼때기살은 생선 볼살로 아버지가 친구에게 하시던 행동을 그대로 한 것이다.
이 얘기를 듣자 어린 시절에 아빠가 주던 풍선고기가 생각났다. 우리 집은 오돌 토돌 한 닭껍질을 풍선고기라고 불렀다. 저녁 식사 상이 차려지기 전에 아빠는 나랑 언니를 양 옆에 앉혀 놓고 뽀얀 백숙 살을 발라줬다. “풍선고기 먹을 사람!” 하고 외치면 언니랑 나는 아가새처럼 “나! 나!” 하고 대답했다. 아빠는 한입씩 번갈아 가며, 하얀 풍선고기를 더 하얀 꽃소금에 콕 찍어 입에 넣어줬다. 그렇게 조금씩 맛보다 보면 얼른 엄마의 쌀밥이랑 같이 먹고 싶어졌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나만의 취향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취향은 줄었다. 어릴 땐 다 같이 야인시대를 봤는데 이제는 각자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은 영상을 본다. 식탁 위 음료라곤 보리차 밖에 없었는데, 이젠 콜라, 맥주, 와인 각자 취향의 음료를 마셔 식탁이 좁게 느껴졌다.
언젠가 더 이상 내가 풍선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걸 안 아빠는 섭섭해 보였다. 제2의 풍선고기 역사를 만들고 싶은 걸까.
최근 회를 먹는데 멍게 한 점을 집으며
“멍게 먹을 사람~? ” 물었다.
언니랑 나, 둘 다 응하지 않으니 아랑곳 안 하고 한번 더 물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한마디 얹었다.
“아, 애들이 안 먹는다잖아~”
갑자기 몇 없는 효심이 발생해 멍게에 젓가락을 댔다. 미끌 미끌한 멍게를 어금니로 두세 번 으깨었다. 바다의 짭조름하고 비린맛이 입 안에 퍼졌다. 맛있다고 말하는 나를 보는 아빠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풍선고기를 먹여주던 아빠 표정도 이랬겠구나. 20년 전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이 순간이 그립겠구나. 언젠가 지금 그리워질 거라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다. 어느 쪽으로든 눈시울이 화끈해졌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아는 맛이더라도, 알 것 같은 맛이더라도 모르는 척 한번 더 시도하고 싶다. 아, 나중에 남자친구가 준 살점은 볼때기 살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애먼 곳의 살을 열심히 발라 준 것이다. 그날 먹은 게 볼살이었는지 가마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보다 포만감 있었다. 어떤 음식은 맛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