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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소굼 Oct 28. 2023

포착하는 여행

카메라와 일기장을 오가며 포착하고 포착되는 여행

 

2018년 여름, 네 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아담한 카페에서 일했다. 통창으로 빛이 쏟아지던 카페의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평소 안 하던 것들을 시도했다. 메모장 속 영화를 몰아서 보고, 집에 있던 복숭아를 가져와 청을 담갔다. 영화를 보다 졸아도, 두 시간 동안 만든 청 맛이 밍밍해도 괜찮았다. 시간을 때웠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밑져야 본전인 시간 속, 낯선 시도에도 관성이 붙어 문득 뉴질랜드에 가고 싶었다. 감탄이 나온다는 자연도 궁금했지만, 이모 집에서 머무르며 숙소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모네는 15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나 북섬 오클랜드에서 터를 잡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화산이 무서웠지만, 타국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도 낭만이라며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또 화산을 겁내기에는 휴전국에서 살고 있기에.


 유명한 관광지들은 남섬 그리고 이모네 집은 북섬이라는 것은 이후에서야 안 사실이다. 가고 싶은 곳을 지도에 모아보니 서울 한강, 강릉 초원목장, 부산 광안리 같은 형태였다. 느긋하게 한 곳에 머무르는 여행을 상상했는데 표류하는 여행을 피할 수 없었다. 기댈 곳을 찾아 얄팍한 마음으로 선택한 뉴질랜드에서 어쩌다가 혼자가 되었다.


 여행 가방 속에는 늘 카메라 후지필름 x70과 검은색 수첩이 들어 있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뉴질랜드였다. 부랴부랴 기록했다. 함께하는 여행의 진가는 비용 절약이 아니라, 기억의 저장공간 확장이구나. 그렇게 기록하다 보니 카메라와 일기장 속 기록의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카메라로는 기대했던 순간들을 포착했다. 푸른 테카포 호수, 아늑한 에어비앤비, 숙소 창가 햇빛. 예측하던 순간들이자 여행의 목적이었다. 수첩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당황함, 소심함, 각박함 등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카메라와 일기장을 오가며 나는 포착하고 포착되었다. 사진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었다면, 일기는 숨기고 싶은 부분이었다. 이 간극이 왠지 부끄러웠다.


 뉴질랜드를 다녀온 지 5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카메라 일기장 속의 내가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 둘의 간극이 ‘그러나’가 아니라 ‘그래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잘 움직이는 만큼 속상한 일에도 조금 잘 동할 뿐이다. 한마디로 감동이 체질인 것이다. 혹시나 나처럼 감동이 체질인 사람이 있다면, 친구가 편지에 적어준 말을 전하고 싶다. 최소한 당신은 아름다움을 포착은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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