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책을 이용하여 양육해 가는 과정을 깊이 있게 연구한 책”이다. 더 짧게 요약하면 4개월 때부터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 책이다. 다만 이를 잘못 받아들여서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우리 아이에게도 얼른 책을 읽게 해야지! 라고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고 싶었을 때 내 마음은 그랬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책이었고 다행히 그것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그럼 장애가 없는 내 아이에게는 더 큰 효과가 있겠구나! 라는 엄마의 욕심이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 책이 나에게 말해준 건, 진정한 사랑이란 믿음이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제대로 바라보는 것, 이라는 사실이다.
# 믿음
부모는 아이를 믿었다. 발달장애가 있어서 또래 아이들과 달랐지만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라면 그 부모가 아무리 똑똑하고 착하더라도 아기 때부터 쿠슐라가 책에 있는 말과 그림을 만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늘 병에 시달리고 신체장애에 정신장애까지 있어 보이는 아기에게 책을 큰소리로 읽어 주라고 할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p199)”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아이를 위해, 아파서 몸부림치고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부모는 책을 읽어 주었다. 부모 자신도 어릴 적 책으로 둘러싼 환경에서 자랐기에 글의 힘을 믿고 있었던 영향도 있다. 또한 세상과 단절된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림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아이에게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쿠슐라의 부모뿐만이 아니었다. 쿠슐라를 치료한 소아과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젊은 여자 의사는 분류한다든지 딱지를 붙이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쿠슐라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 의사도 ‘쿠슐라는 쿠슐라’일 뿐이었고, 이 아이는 잠재 능력을 최대로 발달시키기 어려운 아이니 도움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했다.(p184~185)”
소아과 선생님은 쿠슐라가 다른 아이들과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르다며 색안경을 끼고 ‘분류’하지 않았다. 세상에 똑같은 아이는 없듯 쿠슐라는 쿠슐라일뿐, ‘발달장애아’라는 이름으로 단정 짓지도 않았기에 쿠슐라가 장애의 한계를 극복하고 언어적인 면에서든 행동적인 면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 사랑은 제대로 바라보는 것
쿠슐라의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책을 보면서 한 말이나 행동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날짜, 시간, 책 이름을 비롯해 아이가 보인 행동과 반응을 꼼꼼히 기록했다.
“늘 기록할 게 있으면 곧바로 기록했다. 쿠슐라 어머니는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했다. (...)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녹음도 했다.(p106)”
당연히 기록이 목적은 아니다. 목적은 아이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이가 어떤 책을 더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발달 단계를 거치고 있는가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이 모든 행동들이 나에게는 ‘사랑’으로 보인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뒤쳐진 발달 과정을 거치고 있는 아이를 보며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져있지만은 않았다.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것이다.
부모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주고 그것을 주는 것, 그게 참된 사랑이 아닐까. 부모라고 해서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쿠슐라도 그녀의 부모님이 참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쿠슐라가 3년 8개월이 되었을 때 한 말에는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잘 드러나 있다. 그때 쿠슐라는 두 팔로 인형을 안고 책이 산더미같이 쌓인 소파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 루비 루에게 책을 읽어 줘야 해. 그 애는 지쳤고 슬프거든. 루비 루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고, 책을 읽어 주어야 해.’
이러한 처방은 어떤 아이에게나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든 없는 아이든.(p190)”
내가 나의 아이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책 읽고 글 쓰는 습관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한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한정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혹은 그 정도의 괴로움이 아닌 상황에서도 나는 죽음을 생각하곤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혼자였다. 아니, 혼자여야만 했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나의 이런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홀로 절망과 맞서 견뎌야 했을 때 나를 견디게 하고 나를 살게 한 것은,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게 한 것은 글이었다. 만약 나의 아이가, 나처럼 그런 절망의 어둠 속을 홀로 서 있게 된다면, 함께 해 줄 수 없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이 글이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생각을 빨아들인다. 이처럼 열심히 읽다 보면 아이들은 삶을 구성하는 복잡하고 모순되는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건 분명하다.(p195)”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하지만 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렇게 되기를 끊임없이 기대하고 희망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아이가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부모인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어리고 이 모든 나의 바람도 욕심이란 것도 안다. 나의 욕심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한다. 내가 아는 가장 좋은 것이 과연 아이에게도 가장 좋은 것인지를 고민하며 끊임없이 나의 앎을 검토한다. 이것이 나의 지금의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