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HIND THE MOVE Nov 17. 2023

콜라보레이션 EP01 | Hion Park

HION PARK의 작품  <Overthinking> 제작기


 

Q.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쩌다가 Overthinking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된 걸까요?


A. 저는 제 인생이 평탄하게, 굴곡 없이 흘러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굴곡이 찾아왔어요. (웃음) 저에겐 굉장한 혼란스러운 해였고 어려운 일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작품 제목처럼 과하게 생각하는, Overthinking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저에게 영상물이란 그 순간의 내 상태를 기록하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비하인드 더 무브가 영상 제작을 제의했을 때 '그럼 내가 가장 영상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상태는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게 과한 생각을 하는 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Q. 그렇다면 작품 Overthinking은 어떤 작품인가요?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A. 시간적 배경은 제가 모든 일과를 끝낸 후, 공간적 배경은 침대 위예요.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제가 자기 전 침대에서 생각을 시작하고, 그때의 제 머릿속을 보여주는 그런 스토리입니다. 생각이라는 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무한히 커질 수 있잖아요. 제 경험에서는 그런 생각이 저를 가장 옥죄는 시간이 밤, 자기 전 침대 위였어요. 그래서 이런 스토리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Q. 그럼 침대 씬에서 이어지는 블랙 호리존 씬은 히온님이 Overthinking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군요.


A. 맞아요. 그곳이 제 머릿속인 거죠. 다른 댄서들은 저를 흔드는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Q. 처음 떠올렸던 아이디어를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고민했을 것 같아요. 하나씩 풀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Component #01 음악과 안무


A. 가장 쉽게 고른 건 음악이었어요. 주제 전에 노래를 먼저 찾았고, 노래를 딱 들었을 때 ‘이런 주제가 좋겠다’ 싶었거든요. 스토리도 바로 떠올랐던 것 같아요. 하나 흥미로웠던 건, 저는 우울하고 생각이 많을 때 느끼는 감정을 이 노래에서 느꼈는데 가사를 찾아보니까 사랑 노래더라고요. (웃음) 신기했어요. ‘내가 우울하다고 느끼는 노래가 누구한테는 사랑 노래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노래 자체가 너무 찰떡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안무도 제가 느끼는 감정을 기반으로 차곡차곡 쌓아 나갔어요. 제가 좋아하는 동작들, 음악에서 느낀 포인트를 살린 동작, ‘남한테 멋있어 보여야 해’라는 기준 없이 제가 '이거 괜찮다, 이런 느낌 좋다'를 기반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침대 스튜디오 공간 | 비하인드 더 무브 촬영 


Component #02 공간


A.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공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 곳은 침대 공간이고요. 저의 방을 상징하는 공간이에요. 다른 하나는 블랙 호리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인데 제 생각을 상징해요. 침대 공간을 선택할 때는 큰 고민은 없었어요. 침대가 있고, ‘누군가의 방’ 느낌이 나고 카메라가 충분한 화각으로 찍을 수 있는 공간이면 됐어요.


호리존 스튜디오 공간 | 비하인드 더 무브 촬영


블랙 호리존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폐공장 느낌의 공간을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배경에 잡다한 게 많은 것보다 댄서들과 저의 합이 더 잘 보이는 공간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검은 배경의 호리존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댄서들과 히온 | 비하인드 더 무브 촬영

Component #03 댄서


A. 제가 디렉하는 영상 중 2명 이상의 댄서를 써본 영상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6명이 엄청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이니까 저랑 편한 사람들 위주로 찾아봤어요. 편하다는 게 서로 격의 없이 장난치는 느낌보다는 춤의 교류가 편한 사람, 서로 여러 시도를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춤의 에너지였어요. 작품이 어두운 주제이고 노래도 무거운 느낌이었기 때문에 엄청 밝은 느낌의 사람보다는 잔잔한 에너지, 무거운 에너지를 가진 댄서들로 제 나름대로 엄선한 베스트 댄서들입니다.


Q. 실제 댄서들과의 합은 어땠나요?


A.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는 파트가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는 제가 6명의 댄서들한테 굴려지는 거였어요. 댄서들에게 설명할 때도 ‘너희들이 나를 들어도 되고, 밟아도 되고 던져도 된다. 대신 내가 너희들한테 휘둘렸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했어요. 이런 전체적인 이미지만 전달하고 ‘같이 아이디어를 짜보자’고 부탁했는데 다행히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착착 내주는 친구들이었고 저와 편한 관계의 친구들이다 보니까 다양한 걸 시도해 볼 수 있었어요.


'여기서 이렇게 해볼까? 안 되네, 그럼 이렇게 해보자.'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어느새 파트가 완성돼 있었고 걱정했던 거와 다르게 제 마음에 쏙 드는 파트가 되었어요. 다시 한번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무한의 감사를 올립니다. 


검정색 의상과 듀렉을 쓴 댄서들 | 비하인드 더 무브 촬영


Component #04 의상


A. 의상의 기본 컨셉은 검정이었어요. 근데 너무 깔끔한 느낌의 검정보다는 뭔가 치렁치렁하고 줄이 많이 달린 의상을 원했어요. 그리고 컨셉에 맞춰 의상을 입은 댄서들을 보니 듀렉을 써도 좋겠다 싶었어요. 듀렉이 힙합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제가 원하던 부정적인 느낌, 어두운 느낌을 더해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각각의 댄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보다는 댄서 전체를 하나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의도했기 때문에 머리와 눈을 가리는 게 원하던 방향과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댄서들에게 듀렉을 씌웠어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과 구분되는 저는 다른 색깔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가장 대비가 확실한 흰색을 선택했어요.


촬영 결과를 함께 확인하는 감독과 댄서들 | 비하인드 더 무브


Component #05 감독


Q. 이번 작품의 감독은 앨빈(유빈) 님인데요. 앨빈 님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A. 유빈이의 작품은 항상 제 원픽입니다. (웃음) 그간 유빈이의 작품은 단 한 번도 마음에 안 든 적이 없었어요. ‘정말 제 취향과 잘 맞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친구구나’라고 생각했죠. 과거에 제 작품을 이미 몇 번 부탁해 보기도 했고 편하게 의견을 물어보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유빈이에게 이번 작품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촬영 시작 전 자세를 잡고 대기하는 댄서들 | 비하인드 더 무브


Q. 촬영 과정을 들어보고 싶어요. 실제 촬영은 어땠나요?


A. 일단 촬영일에 제가 긴장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웃음) 여러 명의 댄서와 촬영하는 건 처음이다 보니 ‘순조로운 촬영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컷마다 어떻게 디렉팅할지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소품도 잘 챙기고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갔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순조로웠어요. 유빈이도 긴장해 보이지 않았고 장비 설치도 큰 어려움 없이 흘러갔어요. ‘이제 춤을 열심히 춰보자’라는 마음으로 춤을 췄죠. 


그러다가 중간에 호상이라는 친구가 갑자기 부상을 당해서 촬영이 중단됐어요. 그때는 정말 아찔했어요. 제 뒤에서 ‘악!’하는 소리가 나서 돌아봤는데 호상이가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치료를 하면서) 저도 정신 붙잡고 ‘이제 어떻게 할까’ 고민한 끝에 ‘호상이가 못 들어가는 부분을 주형이가 대신하자’고 빠르게 판단하고 바로 오더를 내렸어요. 다행히 댄서들도 오더 대로 착착착 움직여 줬고 큰 문제 없이 촬영을 마쳤어요. 호상이가 다친 것에 대해서는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큰 사고가 난 것에 비해서는 잘 마무리된 촬영이었어요.


Q. 사실 현장에서 놀랍기도 했어요. ‘저렇게 다른 사람 파트를 순식간에 메울 수 있다니’라고 생각했어요.


A. 사실 그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에요. ‘원래 댄서들이 많이 해봐서 저렇게 착착 해내는구나’하실 수도 있는데 새로운 파트의 안무를 5분 안에 배워서 당일 촬영한다는 게 쉽게 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그날 그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침대 위에 반쯤 누운 느낌으로 앉아 있는 댄서 히온 | 비하인 드 더 무브


Q. 호리존 촬영 이후 침대 스튜디오 촬영은 어땠나요?


A. 저는 침대 스튜디오 촬영이 호리존 촬영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춤보다는 공간이 주는 느낌과 연기만 촬영하면 되어서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웃음) 생각보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았던 촬영이었어요. 그리고 호리존 촬영을 끝내고 밤늦은 시간에 촬영하다 보니까 피곤한 상태여서 집중하기도 어려웠어요. 


생각해 보면 춤의 유무와 상관없이 영상의 메인 배경이고 현실이라는 뼈대의 공간이라 중요한 촬영인데,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았더라고요. ‘왜 더 준비를 안 해갔을까’ 싶었어요. 마지막에 공간을 1시간 더 대여하면서 우당탕탕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무탈히 촬영을 마무리해서 다행이었어요.




Q. 작품을 다 찍었는데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간단하게 소회를 들려주세요.


A. 일단 비하인드 더 무브에 굉장히 감사합니다. '댄서로서 너의 춤으로 만든 작품을 보고 싶어'라는 얘기를 듣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고 감사한 마음에 더 열심히 작업했어요. 


다른 디렉터 밑에서 여러 명의 댄서들과 촬영한 경험은 있지만 제가 여러 명의 댄서를 디렉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한 건 처음이다 보니 ‘내가 봐왔던 그 멋있는 디렉터들처럼 잘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이 많았거든요. 다행히 여러 가지 운이 섞여서 좋은 촬영을 할 수 있었고 저도 많이 준비하고 많이 연습해서 잘 마무리한 촬영 같아요.


많이 배운 시간이었어요.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여러 명의 댄서들과 작업할 땐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디렉팅을 전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이런 걸 많이 배웠어요.



Q. Overthinking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온 작품이잖아요. 작품을 다 찍은 지금 Overthinking은 히온 님에게 어떤 대상인가요? 뭔가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A. 생각이 많은 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쁜 생각이 많은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 더 힘들었던 것 같고요. 지금은 이겨내는 법을 찾았어요. 저를 힘들게 하는 건 나쁜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불안함인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가상의 두려움, 불안함이더라고요. 그런 감정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가서 무서워하자, 그때 가서 두려워하자' 라는 미룸의 법칙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당시의 히온은 침대에서 끙끙대면서 힘들어했다면 지금의 히온은 그 두려움을 끊어내는 시점을 알게 됐습니다.


침대 앞에 걸터 앉아 있는 댄서 히온 | 비하인드 더 무브


앞으로 히온 님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으신가요?


A. 지금 그 갈래 가운데에 서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확실히 찾은 것 같은데 ‘거기서 네가 되고 싶은 모습은 뭐야?’라고 했을 때는 아직 못 찾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편으로 최근에 알게 된 저는 생각보다 먼 미래를 많이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너무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기준으로, ‘나는 이런 느낌이 좋아’라고 생각하면 이런 느낌의 안무를 짜고 ‘나는 이런 느낌의 영상이 좋아’라고 생각하면 이런 느낌의 영상을 찍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먼 미래를 보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생각했던 그 미래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저의 미래는) 미래의 히온한테 맡기겠습니다. (웃음)


Q. 긴 인터뷰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댄서들과 감독님께 한 마디 부탁드려요.


A. 일단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모두들 제 마음속 원픽 댄서, 원픽 감독님이에요. 덕분에 촬영 내내 마음이 편했어요. ‘촬영은 무탈히 잘 끝나지 않을까’ 확신이 든 것도 함께하는 게 여러분이었기 때문이에요. 잘 해주셔서 다들 너무 감사드리고, 호상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더 많이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파이팅!


- The En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