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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봄 Dec 06. 2020

ADHD약, 콘서타 먹고 나아진 것과 나아지지 않은 것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성인 ADHD (주로 성인은 조용한 ADHD)를 진단받은 나는 콘서타 36mg를 복용 중이다. 약을 먹자마자 고양감 때문에 잠깐 모든 게 괜찮아졌지만, 사실 그건 오래가지 못하고 ‘이게 약효가 드는 건가? 안 드는 건가? 이게 뭐지?싶을 정도로 평온해지는 게 일상이다.


 아무튼, 나도 꽤 오랫동안 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콘서타를 먹고 나아진 점이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가 나아지지 않은 점도 있다.


약을 먹고 나아진 것


 1. 집중력이 올라감

 -ADHD를 겪는 사람이라면 집중력 문제를 가장 많이 호소한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잡생각과 망상이 끊이지 않는 ADHD는 그걸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일에 집중을 잘하지 못한다. 나도 맨 처음 약 먹었을 때 집중력이 바짝 올랐지만, 약 용량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27mg를 먹었을 때는 약효를 잘 보지 못했고, 36mg로 올렸을 때는 27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처음 먹었을 때보다는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약은 도와줄 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바뀌도록 해야 한다. ADHD를 겪지 않은 사람이 다 집중력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외부 자극이나 잡생각 같은 걸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할 수 있다.’라고 말하신 게 떠올라서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약을 먹고 난 뒤, 무언가를 할 때면 잡생각과 망상이 사라졌다. 물론 처음에는 망상과 잡생각이 튀어나왔지만, 스스로 그만하고 일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 다시 그곳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씩 외부 자극을 통제하여 일에 집중하게 만드니 나는 오랫동안 한곳에 집중할 수 있게 습관이 길들여졌다.


 2. 소리에 덜 민감해짐

 -나는 집중하고 있을 때, 뒤에서 걷거나 키보드 소리가 나면 거슬려서 속으로 극단적인 욕을 하고 저주를 내렸는데, 확실히 약을 먹고 난 뒤에는 그런 예민함이 줄었다. 고민이 많을 때마다 뒤에서 걸어 다니는 직원이 내가 약을 먹는 동안에 여러 번 그런 행동을 보였었다. 원래라면 하고 있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귀에 다가온 발소리에 속으로 욕을 하고 죽으라고 저주를 했을 텐데, 약을 먹고 난 뒤에는 ‘에휴, 또 고민하시는구만. 나는 일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하면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약효가 떨어질 시간에는 다시 소리에 예민해지지만)


 3. 일정관리와 우선순위

 -나는 일정 관리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어떤 일이 먼저인지 전혀 모르고, 질문하는 일이 많았는데, 약을 먹고 난 뒤 스케줄러를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갔다.


 ADHD는 메모나 스케줄러가 특히 중요한 거 같은데, 일정 관리와 우선순위를 쉽게 정리할 수 있고, 중요한 내용을 스케줄러에 적어놔서 까먹는 일도 적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스케줄러를 달고 살고, 무언가 질문하기 전에 스케줄러부터 살펴본다. 그러니 질문하는 일도 줄어들고, 일정 관리하는 것도 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선순위도 대표님이 직접 짜주지 않아도 스스로 순서를 정해서 급한 것부터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4. 회의 시 차분히 말을 들어줄 수 있게 됨 (차분해짐)

 -나의 또 다른 문제는 기다리는 것을 못해서 사람이 말을 하기 전에 가로막고 내 얘기를 했다. 이것 때문에 몇 번 혼났던 일도 있었는데, 약을 먹으면서 회의할 때 사람들이 말하는 걸 끝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약을 먹기 전에는 항상 급했는데, 약을 먹고 나서 차분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사람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인지 생각도 안 하고 말을 내뱉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말을 끝까지 들으니 그 사이에 내가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말이 끝나면 머릿속에 할 말을 정리해서 차분히 내 의견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회의할 때 의사소통이 잘 되었고, 회의에 어긋나는 말을 내뱉지도 않게 되었다.


 5. 끈기 있게 무엇을 하는 것

 -나는 과몰입에 심한 편이어서 무언가 재밌는 게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충동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질리면 바로 손을 떼거나 벽에 부딪히면 포기해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약을 먹고 난 뒤에는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급하게 성공을 바라지도 않게 되었으며, 차근차근 이루어내려고 계획을 짤 수 있게 되었다.


 6. 주변 정리

 -나는 항상 주변 정리가 문제였는데, 한번 대청소를 하고 난 뒤 주변 정리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항상 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복잡하고 더러웠던 내 방은 깨끗해졌고, 이리저리 늘어져있던 책상 물건들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7. 건망증

 -물건을 많이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물건을 빼놓는 것 같은 증상이 많이 줄었다. 특히 나는 내가 방금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심했다. 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고데기 코드를 뽑았는지 기억이 안 났다. 몇 번이고 에어컨 껐다고 중얼거리지만, 머릿속에 에어컨 껐다는 걸 까먹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몇 번 중얼거리면 내 행동이 다 기억이 나고, 중요한 물건을 빼먹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강박증도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지갑이 가방에 잘 있는지, 지갑 안에 카드가 잘 있는지 몇 걸음 걸을 때마다 확인했는데, 요새는 한번 확인하고 나면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괜찮아졌다.


 그 외 많은 게 변했지만, 아직 나아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약을 먹고 나아지지 않은 것


 1. 충동적인 증상

 -물론 약을 먹으면 충동적인 증상이 줄어들긴 하지만, 약효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충동적인 증상이 여전히 심하다. 쇼핑앱에 할인 특가가 뜨면 쓸모가 없어도 지르고 보기도 하고, 새벽에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택시를 타기도 하며, 퇴근할 때도 갑자기 택시를 잡고 집에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까 경제관념이 아직 자리 잡히지 않았고, 매번 노력하려고 하지만, 약효가 끝나면 다시 충동 조절하기가 힘들다.


 2. 일상적인 대화에서의 주의력

 -회의할 때는 차분히 말을 들을 수 있게 됐지만, 직장 동료나 친구와 만나 일상적인 얘기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을 가로막고 내 말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집순이 성향이라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입이 터진 걸 수도 있지만, 여전히 약을 먹어도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 흥분해서 말을 가로막는 증상이 나온다.


 3. 영상과 문장을 읽기가 힘들다

 -이것도 약을 먹고 많이 나아진 거지만, 여전히 힘든 건 마찬가지이다. 영상은 최대 7-8분이면 집중력이 뚝 끊기고, 영화나 드라마는 아예 볼 생각조차 안 한다. 나는 영상 편집하는 것이 직업이라 특히 이 증상이 매우 힘든데, 잘 보고 있다가도 가끔씩 주의력이 날아가 뒷 영상을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마음대로 중요한 걸 빼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글까지는 읽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중력이 떨어져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 연습하려고 지하철에서 뉴스 같은 걸 읽기도 하고, 영상 보는 걸 연습하고 있긴 하지만, 조금 오래 걸릴 듯하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이다. 쓰고 나니 나아지지 않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 요즘 내 평온한 기분 (가끔 우울함이 찾아오긴 하지만)을 보면 확실히 약을 먹고 나서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칭찬을 많이 듣기도 하고, 예전보다 성취감도 제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날씨나 PMS 때에 찾아오는 우울감이 아니라면 나는 그냥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약을 먹고 나서 바쁘게 살았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이모티콘 도전을 하고…. 하나씩 무언가를 늘려가고 완성할 때마다 진작에 약을 먹었으면 나의 20대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바뀐 게 어딘가 싶기도 하다. ADHD 약이 만족스럽다. 최근 병원에 갔을 때도 선생님께서 내 기분이 달라 보인다고 하고, 내가 하는 노력들이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약효가 끝나도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더 노력해야겠지만, 이 정도 바뀐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만족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 조그마한 약 하나로 일상 하나가 바뀌었다는 게 아직까지 믿기지 않지만, 내 인생에 제일 잘한 건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ADHD 진단을 받으러 간 거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만, 모두가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파이팅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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