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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모리 Oct 30. 2020

관계의 권태기

인간성의 변화로부터의 복잡함 혹은 단순함의 반복

오래된 연인들 사이의 '권태기'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그 '권태기'라는 것은 비단 연인관계 사이에서 만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다.


'권태'란 사전적으로 단조로움, 심심함, 따분함을 포함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누가 처음 만든 단어 인지, 권태라고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마른 명태 같은 게 홀로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상상된다.

최근에 오랜 친구인 D와의 관계에서 말할 수 없는 권태로움이 느껴졌다. 대화를 나누고 있자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권태로움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한동네 살며 계속 잘 지내 온 오랜 친구로, 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회사 위치도 거의 한 블록 차이여서 아침에 운동도 함께 다니며 심할 때는 점심도 같이 먹었다. 일주일이 7일이면 5일~6일은 보던 사이였고, 오늘 보면 또 내일 할 말이 생기는 친한 지기이다.


그런 고마운 지기의 관계에서 나는 왜 말할 수 없는 단조로움, 심심함, 따분함을 느끼는 걸까. 이 관계의 권태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가설 1번은 항상 같은 방식의 대화 흐름과 일상의 반복. 거푸집마냥 비슷하게 보내는 매일에서 오는 지겨움이었다. 내가 '아'하면 니가 '어'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녀의 단점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 관계의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성수동에서 장인이 맞춰준 수제화처럼 내 발에 꼭 맞을 수는 없는 법이라 사실은 그동안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깊이 묵인해 오던 그녀의 단점들이 이제와 크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예로 들을 수 있는 가설은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이다.

사람의 본질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아서 결국 안 맞는 부분은 안 맞고 마는 것이다. 운동화 안에 있던 아주 작은 돌멩이가 처음에는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하여 두고 지낸다. 나중이 되면 자연스럽게 빠지겠지 희망적인 마음만 품고 걷는 도중 그 돌멩이가 거슬리는 날도 있고 우연히 자리를 잘 잡아 거슬리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돌멩이가 있었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구르고 구르던 그 돌맹이가 발에 그만 콕 박혀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 관계와 인간성이 이미 앞을 내다보고 아, 이 친구 다음에 할 이야기는 내 신경을 거슬리겠군 하고 예측 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설 2번은 사람의 인간성은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함께 즐기며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이야기 나누었을 주제도, 10년이 지나니 변해버린 내 가치관과 어긋나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을 겪었고 심경에도 정말이지 많은 변화를 겪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는데, 오래된 관계는 도무지 이렇듯 빠르게 변하는 내 인간성에 따라오지를 못하는 것이다.

내 인간성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시대 문명이라면 이 관계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더블클릭을 한번에 못하는 할머니 같다. 실제로 우리는 휴대폰이 플립일때부터 친구였고 흑백 전자사전에 팬픽을 저장하며 감정을 공유했다. 이 오래된 관계는 아련하고 소중하지만 그만큼 낡아보일 때도 종종 있다.

 

두 가지 가설은 생각하며 나는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제 2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제1 가설을 반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이 어떤 부분이 관계의 권태를 만드는가.

나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고 D와의 사이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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