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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May 02. 2022

내가 ~와 살았더라면

  사촌오빠 결혼식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예상했듯이 나에게 어디에 취업하고 싶냐고 물었다. 어디에 취업하고 싶냐고요? 삼성이나 네이버, 카카오처럼 돈 많이 주고 복지도 좋은 곳이요… 그렇게 대답해봤자 뒷감당은 나의 몫이므로 구체적인 기업명은 언급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친척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친척들과 가까이에 살았다면 벌써 취업하고도 남았겠지? 그렇게 옆에서 취업하라고 닦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디든 빨리 취업했을 것 같다. 뭐 지금 생각하니까 딱히 나쁜 건 아니네.


  그리고 이어서 만약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면 어땠을까? 엄마와 지금까지 살았다면? 할머니와 살았다면? 아니면 남자 친구를 사귀어서 남자 친구와 살았다면? 등등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인천 집에서 친구들과 살았다면… 우린 거기서 누군가의 졸업도 축하하고, 취업도 축하하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와 함께 야식도 먹었겠지? 누구 한 명은 뚜레쥬르 매니저가 됐을 수도 있겠다. 또 누군가와는 지금보다 더 가까운 사이 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는 사이가 틀어졌을 수도 있겠다. 그곳에서 코로나를 겪지는 않았는데 좁은 곳에서 여러 명이서 복작거리며 살았다면 한 명은 분명 코로나에 걸렸을 것이다. 한 명이 걸리면 끝이니까 다 같이 격리했을 수도... 재밌을 것 같은데…?!


  엄마가 2018년쯤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난 지금보다 더 바른생활을 했으려나? 그런데 막판엔 엄마도 내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거에 대해 포기한 상태였으니 크게 다르지 않았겠다. 그래도 식습관은 좀 나았겠다. 쓸데없이 배달음식 시키는 걸 안 좋아했으니까 혼자서 충동적으로 엽떡을 시키거나, 최소금액 때문에 햄버거 3개 정도 채워서 버거킹 시키는 일은 반의 반으로 줄었겠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큰 친구들이 조금 신기했다. 내 머릿속에 할머니는 명절에 차 타고 4~5시간 정도 가야 만날 수 있는, 가끔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차려주고 재워 주기도 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의 이미지를 왠지 모르게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면 지금은 모르는 할머니의 새로운 면을 많이 봤을까? 목소리가 크고 고집이 세다며 흉보기만 했는데… 같이 살았다면 흉보는 일이 더 잦았을까 아니면 줄었을까?


  마지막으로 만약 남자 친구와 동거를 했다면? 예전에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 명만 자취를 하면 반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뭐 여대라고 없겠냐마는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내가 그랬다면 남자 친구와 더 빨리 헤어졌을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계속 눈에 밟히고 모든 걸 함께 하려고 한다면 힘들 것 같다. 앞으로도 동거는 하지 말아야겠다. 아닌가. 같이 살아봤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날 받아 줄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어!’ 하고 빨리 결혼했을 수도 있겠네. 어떤 쪽이든 유쾌하진 않고 조금 끔찍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난 누구와 살아야 하며, 누군가에게 동거인이 될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당연히 혼자 사는 게 가장 고민도 없고 쉬운 방법이지만, 언젠가 친구든 가족이든 애인이든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될 수도 있으니… 적어도 누군가에게 나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근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도 몰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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