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7일 화요일에 호치민에 왔다.
오늘은 2023년 4월 23일, 약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났다.
GYC로 하노이에 간 게 작년 11월 말이니.. 베트남에서 산 지 거의 4달이 되어 간다.
아직 베트남의 많은 부분들이 낯설다.
하노이에 살다가 호치민에 와서 그렇기도 하고 아직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참 많다.
여하튼 짧은 시간이지만 느꼈던 것들,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써 보려고 한다.
먼저 인간관계에 대해 쓰고 싶다.
이곳에 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데,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사귀고 만나야 할까?
사실 나에게 이런 상황이 올 지 몰랐다.
한국에서는 이미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곳으로 오면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약속을 한 달에 한번 잡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잡지만, 난 일주일에 최소 2~3번은 친구들을 만났다.
우린 가까이 살았고 집에 있다가도 누군가가 단톡방에 카페 갈 사람~ 하면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카페에 가고 싶다고 카페 갈 사람~이라고 말할 단톡방도 없고,
설령 간다고 해도 내 친구들과 갔을 때처럼 편하지 않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얘가 요즘 뭘 하면서 지내는지 또는 무슨 고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것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를 만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야 한다.
왜 호치민에 왔는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
형제는 어떻게 되고, 자유 시간에 뭘 하는지 등등…
그래 뭐 나쁘지 않다. 너무나 단순한 질문이지만 말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게 많기 때문이다.
‘자유시간에 하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네? 그래도 한국에서보다는 열심히 살고 있군..’ 등등..
그런데 문제는 이걸 다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뉘앙스라는 게 있고,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100% 다 전달하는 건 힘들다.
얘기가 딴 길로 샜는데 어쨌든 여기서 나름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시간이 날 때면 집에 있기보다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한다.
먼저 말 거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더 노력하고 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호치민에서 처음으로 사귄 베트남 친구는 어떤 남자애였다.
난 써클케이에서 삶은 계란을 먹고 있었고, 어느 헬스장을 다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딱 봐도 운동을 많이 한 몸이었고, 그래서 나는 헬스장 가격을 말하며 비싼 건지 물어보았다.
물론 지금은 메시지가 끊겼지만, 그 친구는 나를 위해 헬스장을 알아봐 주었고 꽤 오랫동안 메시지를 했다.
첫 번째 친구보다는 두 번째 친구들을 만난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혼자 Lost&Found에 간 날이었다.
호치민에서 혼자 가기 좋은 바를 찾으려고 네이버를 뒤지다가 이 바를 발견했다.
구글 지도에서 별점이 5점이길래 고민 없이 향했다. 여기에 간 게 신의 한 수였다.
혼자 바에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며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텐더가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바텐더는 슈퍼주니어의 팬이었고 호치민에서 열린 슈퍼쇼에도 갔다 왔다고 했다.
이럴 때는 정말 케이팝에 감사하다. 케이팝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말문을 틀 수 있다.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에 나갔다.
바에 있던 베트남 친구들 3명 중 한 친구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혼자 노래를 들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말 걸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용감하니까!!!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 학생이세요? 물어봤는데 그는 영어를 엄청 잘했다. 조금 머쓱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였고, 다행히 그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었다.
꽤 오랫동안 밖에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안에 있던 그의 친구도 나와서 함께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셋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여하튼 같은 학교를 나와서 꽤 오래된 사이였다.
그 후 안으로 들어가 합석하여 칵테일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다. 먼저 말을 건 스스로가 기특했다.
그 만남을 이후로 한 친구와 만나서 카페도 가고, 공원도 가고.. 다 같이 강변에서 노을도 보고 바에서 게임을 하며 술도 마셨다.
또 한 친구랑 박물관에 가고 루프탑 바에 가고 이것저것 하며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전시도 보러 가고.. (약간 허무한 전시였지만..)
아 어제도 한 친구와 만나서 소주를 마셨다.
이렇게 우연한 그렇지만 의도적이었던 만남이 많은 만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 있을 때 가끔 우울에 빠졌다.
물론 타국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스스럼없이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친구들이랑 저렇게 놀았는데.. 애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나도 애들이랑 놀 때 저렇게 즐거워 보였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가 했던 말인데,
그 친구도 일본에 가서 일본인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고 또 실제로 많이 친해졌으나
가끔 얘네한테는 그냥 내가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 1이겠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말이 떠오르면서 이 친구들은 친하고 끈끈한 집단 같은데 나만 이방인 같고 내가 갑자기 떠난다 해도 그리 슬퍼할 것 같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 슬퍼할지도? 특히 나랑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낸 한 친구는 더 슬퍼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필요성을 느꼈지만 항상 미루기만 했다.
한국에서는 당장 영어를 쓸 일이 없다. 영어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든 다 나눌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정말 얕은 이야기 밖에 나눌 수 없게 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평일엔 일을 하다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인간관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넘기고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해외에서 혼자 사니까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예전에는 쉬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지? 왜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하지?
그렇지만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살아보니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낯선 곳에 있으니 하루를 공유할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애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하게 되고,
가끔 혼자 누워 있으면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들만 만났지만, 여기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에 어쩌면 나와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혼자 사는 상황은 너무 자유로워서 어쩌면 위험하고 취약한 상황이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자고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고 있다.
조금 웃기지만 최근에 유튜브에서 연애 관련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중에서도 곽정은 씨의 영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거 딱 나다! 하며 소름이 돋았던 게 사랑의 6가지 유형을 말해줬을 때다.
6가지 유형 중에는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이 있다.
이 유형은 상대방의 작은 매력 하나에 자신을 건다. 혹은 그 사람이 나를 좋다고 하면 그 사실 하나에 올인한다.
이런 환상적인 무언가를 연애의 신호탄으로 삼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꾼다.
게다가 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타입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여기서 정말 소름이었다.. 나도 스스로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낭만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고 인정하기도 싫었다.)
이 유형의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두리번 두리번거리면서 사랑을 찾게 된다.
‘오늘은? 이곳에는?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했는데.. 왜 없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랑을 애원하고 구걸한다.
자존감의 측면에서 봤을 때,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은 자존감이 높을 수가 없다.
내가 온전히 서 있어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게 되는데, 늘 위태로운 상태로 날 구원해 줄 동아줄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많고 순식간에 폭발적인 사랑에 빠져 들기를 원한다.
상대방은 그걸 못 받아주는 경우도 있고 애초에 이 감정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많다.
내가 왜 그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지, 왜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또 사람을 만나도 왜 마음이 공허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이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 사람의 어떤 부분이 맘에 들고, 불같은 감정을 느끼고 (조금 공허하지만)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한 관계는 나에게 좋지 않다.
이다음에 나오는 유형은 바로 유희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게 사랑은 그냥 노는 거고 재미다.
이러한 유형은 앞서 말했던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과 만나기 쉽다.
왜냐하면 이 유형은 내가 재밌으려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이 조금 진지해지면
또는 연인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 발을 뺄 준비를 시작한다.
만약 낭만적인 사랑을 하는 A가 유희적인 사랑을 하는 B를 만났다면, 그때부터 A는 B에게 더 잘해주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B는 어떻게든 A를 떼어 놓을 모든 방책을 다 쓴다.
결론은 A가 상처받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이걸 여러 번 경험한 A는 자존감이 박살 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애인 복이 없어..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그래.. ’이런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그럼에도 왜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은 유희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과 만나게 되는가?
서로 원하는 무언가가 맞으니까 자꾸 결합이 되는 거다.
좀 더 천천히 관계를 진전시킬 수는 없을까? 좀 더 친구처럼 다가갈 수는 없을까?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을 천천히 알아 갈 필요가 있다.
와 정말 이 영상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영상의 제목은 “우리가 자꾸 나쁜 남자만 만나는 이유”지만 제목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본인이 어떤 사랑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으며, 왜 자꾸 같은 문제를 겪는지 시원하게 답을 내려준다.
특히 최근에 만났던 중국인 남자애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나는 딱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이고, 걔는 딱 유희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걔가 먼저 말을 걸었던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했고 사랑의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호치민에서 며칠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낭만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걔가 날 보러 하노이에 온 순간 나의 사랑은 엄청나게 커졌다.
하지만 걔는 단순히 유희를 위해 날 만나고 데이트를 한 것이다.
그냥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재밌으니까, 커플처럼 스킨십을 하고 순간의 애정을 느끼는 게 나쁘지 않으니까.
그리고 정확히 내가 우리의 관계,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시점부터 회피하고 멀어지려고 했다.
비자 때문에 일본에 있어야 한다. 영주권이 필요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좋은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나에게 댄 여러 핑계들이다. (그래놓고 지금 태국 여행 엄청 다니더라~)
제일 괘씸한 건 직접적으로 “너와 진지한 관계를 이어 나갈 만큼 널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거다. 차라리 그렇게 말하면 쌍욕이라도 하지..
난 친구들에게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로맨틱한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날 보러 하노이까지 왔는데…” 라며 열을 냈다.
한 친구는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로맨틱한 상황이 좋은 거고, 그런 자신에 취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맞다. 그는 그 상황 자체를 즐겼을 뿐이다.
이 영상을 보면서 왜 내가 그렇게 빨리 사랑에 빠졌는지,
왜 우리가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는지(당연히 그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나는 정확히 ‘정말 남자 보는 눈이 없어.. 왜 이렇게 이상한 놈들만 꼬일까?’라고 자책했다.
요즘에는 이러한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처음부터 그 사람의 일부만 보고 훅 빨려 들어가지 말고,
좀 더 찬찬히 그 사람의 여러 부분을 보며 조심스레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