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함 뒤의 여운이 남는 메시지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감독 : 다니엘스(Daniel Kwan, Daniel Scheinert)
장르 : SF, 액션, 코미디
영화내용의 일부 스포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행세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세상에서는 이 현실의 나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처음엔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고 하여 단순한 호기심으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걷잡을 수 없는 전개와 B급 감성, 수도 없이 바뀌는 세계 속 장면들이 전환되며 영화 초중반까지는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헷갈리기만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고 갈등이 고조화되며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평행우주(멀티버스)라는 상상 속의 소재를 통해 진행된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인 이민자 에블린 왕(양자경)은 고된 이민 생활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착하기만 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남편 웨이먼드(키호이콴)에 대한 불만, 대학을 중퇴하고 커밍아웃을 한 딸 조이(스테파니 수)와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에블린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남편에게 청혼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을 온 상황마저 후회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무조사를 위해 가족과 함께 국세청으로 가게 된 에블린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며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남편 웨이먼드를 보게 된다. 다른 우주에서 온, 일명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건네준 생소한 장치를 귀에 꽂자 영화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멀티버스로 확장하여 전개된다.
'버스점프'라는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기술을 통해 다른 세계의 나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게 되며, 에블린은 수많은 우주 속의 자신을 목격한다. 액션배우가 된 에블린, 셰프가 된 에블린 등.... 이후 에블린은 이 영화의 악당이자 알파버스 세계에서의 딸인 조이, 일명 조부 투바키를 마주친다.
무수한 버스점프를 통해 너무 많은 자아를 겪게 된 조부 투파키는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캐릭터이다. 이후에는 영화의 최종 흑막이자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검은 베이글이 그녀를 소멸의 길로 끌고 가려고 한다.
영화 초반의 둥근 거울부터 영수증에 그려진 동그라미, 거기에 베이글까지, '0'이라는 숫자를 통해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그란 소재가 연이어 등장한다. 이와 반대로 에블린이 마지막 결투장면에서 이마에 붙이고 있던 인형 눈알(Googly eyes)은 앞서 나열한 무의미함을 나타내는 소재와 모양이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상징물이다. 영화 '닥터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도 등장한 제3의 눈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다루는 내용으로 명료한 정신과 통찰력이 생겼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멀티버스 중에서도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린 꿈이 많은 최악의 에블린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응원 메시지를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이 세계의 에블린에게 희망을 걸고 넘어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너무 못하니까...'라고 말했던 것처럼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는 것은 그만큼 어딘가에서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생에서의 감정, 인연에 충실한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에블린은 결국 가족을 되찾고 모든 사건을 일단락 짓게 된다. 멀티버스 속의 여러 자신을 경험하여 모든 능력을 획득하여 베이글에 빨려 들어갈 뻔했던 에블린이었지만, 결국 현생에서 가족을 통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경험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즐기기만 해도 재밌는 요소들도 많이 있다. 버스점프를 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개연성이 없는 코미디적인 행동과, 홍콩영화의 특징을 가져온 박진감 넘치는 액션, 매트릭스, 라따뚜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유명한 영화에서 따온 패러디장면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 와중에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여러 상징들을 억지로 무겁지 않게 다루었기 때문에 더욱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래전부터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빠져있었다 보니, 이 영화처럼 오래전부터 '다른 평행세계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멀티버스 개념처럼 '내가 예전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후회스러웠던 삶을 살지 않았을 텐데....'라는 마음도 가져보았다.
비록 멀티버스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소이지만, 이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계속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선택을 통해 살아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름의 노력을 통해 작지만 여러 성과도 이루어보았다. 이런 인연들과 인생에서의 발자취는 설령 다른 멀티버스가 정말로 존재할지라도 그 세계에서는 넘볼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삶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래간만에 좋은 영화를 만난 것 같아 매우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