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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tober Oct 14. 2020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 불시착한 어느 별에서

비행기에서 마주한 일몰

무엇이 되고 싶었고,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이런 이유로 어른에 대해 갈망했다. 어른이 되니 기대했던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선택은 그저 책임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했다. 하루하루 이렇게 늙어가는 것만 같았다. 점차 내가 소멸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 사이사이마다 외로웠다.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의 무언가를 채워보려고 뭐든 열심히 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연애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여행도 했다. 외로움을 채우려 인간관계에 몰두했던 적도 있다. 내게 얽힌 모든 인연들에 잘 보이기 위해 광대처럼 웃기고, 웃으며 내 안의 어둠을 감추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른이란 잘 감추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결핍과 외로움을 감추고, 몇 없는 것들을 내보이며 나를 어필하는 것이었다. 어린 왕자를 빗대어 생각해보면 어른은 그저 낯선 별에 불시착하는 일과도 같은 것이었다. 불시착한 별에서 상처 받고 상처 주며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일 그게 어른이었다.




어쩌면 나는 순수함을 쉽게 잃고, 잊으며 눈에 보이는 게 전부고, 정답인 양 순수한 아이를 너무나도 쉽게 모독했던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지 모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아파하던 게 언제인가. 편한 게 좋은 거라며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보아뱀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모자라 단언하는 어른과 다를 게 무언가. 나도 결국 보통의 어른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보아뱀의 실체를 알아봐 주겠노라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보겠노라고 다짐하며 슬픔을 달랜다. 어쩌면 어린 왕자는 살아가는 동안 맺어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기에 무언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낯선 별에서 나만의 장미꽃과 사막여우를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의 장미꽃이, 사막여우가 되기도 하며 그렇게. 우리는 그 안에서 상처 받고 상처 주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소소하고 작은 행복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과 내가 함께였다는 사실로 위로해 본다. 유독 오늘따라 더 어린 왕자가 되어 당신의 별에 놀러 가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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