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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Feb 01. 2021

암스테르담 통곡담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정미진

p.17 그래서 고흐의 나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고흐 박물관을 향하는 정유의 이야기가 십 년 하고도 한~~참 전의 제 이야기 같아서 참 웃겼어요. 저에겐 한 때 싸이월드에 "고흐의 열정처럼"이런 낯 뜨거운 대문글을 써놓던 시절이 있었었더라죠. 그리고 고흐의 그림을 직접 보러 가겠다며 풉. 아무 준비도 없이 유럽행 비행기를 탑니다. 암스테르담에 고흐 박물관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거기에 어떤 작품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식해서 용감하게 출발합니다. 몇 나라를 돌고 드디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들어온 날. 하하하 혹시나 그 옛날 암스테르담 길거리에서 울고불고 기차역에서 울고불고 호텔에서도 울고불고하던 사람을 보셨다면 그거 저예요.  

 저는 토요일 늦은 오후에 드디어 고흐를 만나는구나 하며 가슴 벅차게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어요. 무식해서 용감한 저는 거기서 바로 숙소를 구하기로 합니다. 일단 인포로 가서 숙소를 문의합니다. 숙소 문의로 줄이 아주 길었던 인포에서는 "오늘 저녁 방 없음" 한마디로 저를 치우고 다음 순서 분을 부릅니다. 순간 멘탈이 많이 흔들렸으나 긍정의 여왕 저는 내가 직접 숙소마다 전화를 해보자!! 하고 공중전화로 갑니다. (라떼는..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숙소는 전화로 혹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전화방에서 혹은 출발 전 한국에서 보통은 미리 다 하고 오지요..) 공중전화로 가서는, '무거우면 짐이 되니 찢어서 몇 장만 가져가야지!'(저 이렇게 대책 없이 비행기 탄 거 우리 엄마가 몰라서 다행이에요..)하며 아주 야무지게 몇 장만 챙겨 온 가이드북에서 암스테르담 숙소 전화번호를 찾아냅니다. 버뜨!!! 전화를 할 수 있는 적은 금액의 돈이 없어요!! 야무지게..(죄송해요) 돈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여행자수표로 잔뜩 바꿔 가져 갔거든요. 그리고 숙소비로 큰 단위의 지폐로만 바꿔 놓았지요.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 늦은 오후. 은행은 문을 닫았고 인포는 줄이 너무 길어 이러다 해가 지겠고, 방은 없고 기차역엔 노숙자와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너무 무섭고. 여차여차해서 동전이 생기고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에 모두 전화해보았지만 다 '풀' 방이 없데요. 그때부터 긍정이고 뭐고 너무 놀라 멘탈이 나가버립니다. 저는 다시 인포로 달려갑니다. 어디라도 좋으니 방이 있는 곳 좀 알려달라고. 그랬더니 어느 호텔 3인용 침대가 있는 방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가격은 뜨악. 하지만 어떡해요. 약에 취한 사람들이 넘치고 섹스의 도시인 (섹스박물관이 유명했고 기차역 앞 기념품 가게마다 성관련 기념품들이 아주 넘쳐났어요) 이 곳에서 어떻게든 빨리 사방이 벽으로 막힌 안전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인포에서 준 지도를 보며 호텔을 향해 캐리어를 끌고 걷고 또 걷습니다. 하도 울어서 목이 너무 마른데 저녁시간이 되어 문을 연 슈퍼도 없어요. 자꾸 울고 다녀서 그런지 경찰관 3명이 저에게 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요. 저는 꺽꺽 울어 넘어가며 아무 일 없다고 말합니다. 옆에 있던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관에게 말합니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다가 헤어져서 그러는 거라고... 하... 경찰관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얘기하라며 가던 길을 가시고 저는 계속 울며 저의 가던 길을 갑니다. 가는 길마다 어둡고 음침하고 마약을 해서 좀비 같은 사람들, 위아래 다 시커먼 드레스와 양복을 입고 무표정으로 무도회를 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 닫힌 상점들, 눈이 닿는 곳마다 다 정말 무서웠어요.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어요. 하... 엘리베이터 없이 4층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가지고 올라갑니다. 드디어 문을 열고 안전한 내 방에 들어왔는데 또 그렇게 눈물이 나요. 아까운 내 돈. 이런 방에서 묵자고 며칠치의 숙박비를 하룻밤에 지불하다니... 하며 울고 있는데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얼른 방문을 잠그고 다시 이어서 웁니다. 옆방의 남자들도 마약을 한 걸까요. 밤새 제 방문을 열듯 손잡이를 달각달각 돌리고 소리치며 놉니다. 비싸고 넓은 그 방에서 저는 한 귀퉁이만 사용하여 두려움과 서러움과 함께 잠을 잤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고 밝아지니 어제의 그 무섭던 암스테르담도, 옆방의 남자들도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아침밥도 맛있고 아침산책 중 보이는 동네도 반짝반짝 예쁘고. 기분이 좋아지고 고흐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다시 가슴이 벅차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고흐를 만났고 황홀하게 행복했습니다. 


p.202 “근데 장사가 잘되니깐 잘되는 대로 또 정신 사납더라고요. 몸도 여기저기 망가지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몇 년 쉬잔 생각에 도망 나왔어요. 마침 이모가 태국 남자랑 결혼해서 살기도 하고.”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첫 번째 단편에서 흘러가는 말로 가게 이름과 소문만 나오는 국수집 사장님이 6번째 단편에서 대사까지 가지고 등장합니다. 그분은 장사가 너무 잘돼 힘들었던 한국의 가게를 정리하고 태국에 와서 국수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큰 역할을 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국수집 사장님을 자꾸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국수집 사장님의 이런 결단력이 굉장히 부러웠어요. 저는 늘 좀 더 열린 세상으로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여행 말고 생활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무엇이 제 발목을 잡은 걸까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 말 안에 이미 그건 그냥 꿈일 뿐 이루긴 어려울 거라고 미리 단정을 짓고 말은 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까지 한 번도 여행자가 아닌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어요. 머리로는 잘 알고 있어요. 인생을 사는 데는 정말 많은 방법이 있고 정답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냥 내가 선택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 쉽지 않았어요. 누구도 준 적 없는 특에 제가 스스로 갇혀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멀리 가면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보고 싶어서 어떡해. 이 나이에 안정적인 일을 해야지 모험을 했다가 이도 저도 안되고 나이만 먹으면 어떡해. 생각해보니 참 답답하네요. 안쓰럽기도 하고요. 안주하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이 책을 읽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같이 읽고 있었어요. 하루키는 소설을 쓰면서도 장사가 잘되었던 재즈바를 폐업하고 본격적으로 소설만 쓰기로 합니다. 또 일본에서 소설가로서의 안정적인 조건을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무명작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국수집사장님과 하루키, 그리고 제 모습을 나란히 보면서 조금 더 행동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건 그냥 다 해보려고요. 


p.219 강가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붉었다가 노랬다가 팥죽색이었다가 하는 노을을 보고 있으니 이제 정말 여행 막바지구나 싶었다. 개도 그걸 아는지 아니면 강바람이 선선하게 콧잔등을 간질여서인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좋다, 좋구나, 여행은 좋은 거구나. 이 순간에 이런 걸 보려고 여행을 오는 거구나.


 요즘 여행이 정말 가고 싶어요. 국내든 국외든 어디라도 '여행'이 가고 싶어요. 낯선 곳에서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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