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유월이 가기 전이라 참 다행입니다
주변에서 난리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영상을 이제야 봤다. 콩쿠르에서 지휘자의 눈물을 훔치게 한 연주라니, 각 잡고 봐야지 생각만 하다 주말이 됐다. 열여덟 소년의 피아노를 배경음악으로 일기인지 모를 글을 시작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기교 넘치다가 이토록 정확하고 담담하게. 1악장 카덴차로 숨막히게 압도하더니 또 바로 차분하고 담백하게 돌아선다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도 어김없이 천재는 등장하는군. 임윤찬 군은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던데 은둔이 요즘 트렌드인지 산이 트렌드인지.
예술이며 연주,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건 참 비생산적이다. 실제로 보고, 듣는 게 더 빠르게 닿을 텐데 말이다. 하물며 나는 음악이며 그림에 하등 소질이 없다. 좋아하는 것을 잘, 심지어 아주 잘 한다는 건 얼마만큼의 축복일까.
엄마는 성악을 전공했고 클래식기타를 즐겨쳤지만, 나는 초등학교 내내 음악을 오십 점 맞고 피아노 학원 집 아들이던 같은 처지의 짝꿍이랑 ‘너네는 왜 그 모양이냐’는 말을 세트로 들으며 컸다. 둘리 만화를 보며 깐따삐야 별로 떠나겠다며 엄마 기타에 올라타기도 했다. (그리고 기타 와장창 부서짐)
짝꿍네 피아노학원도 얼마간 다녔는데 포도송이인지 체리방울인지를 색칠한 기억은 있으나 피아노를 열심히 친 기억은 그닥. 선생님이랑 나란히 앉아서 뭔가를 연주할 때 짜릿했던 짧은 기억은 남았지만 짧은 손가락은 바이엘 4권에서 체르니 100으로 건너기에 역부족이었다. 못난 손가락뿐 아니라 늦된 머리도 문제였다. 외계어 같은 악보는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건지.
당시 어디선가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에는 비형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듣고 나는 왜 애석하게도 비형으로 태어나서 성격은 괴팍하고 양손은 각각 움직이지 않느냐고 엄마에게 가서 따졌다. (엄마는 오형이고 아빠가 비형인데?) 그리고 중학생쯤 되어서 다시 한번 피아노에 도전했지만 나이 먹어도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놀게 하는 건 어려웠고, 악보는 꾸준히 이해가 안 갔다.
엄마는 산만한 나를 바로잡는다며 바둑을 배우게 했다. 나는 기보를 못 외워서가 아니라 양반다리를 잘 못한다고 맨날 혼났고, 너희 엄마는 저렇게 우아한데 너는 왜 그러냐는 말을 어김없이 들었다.
이런저런 시련 끝에 제법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듣는 어른(?)이 되었지만 철이 들기보단 여러 개의 가면을 갖는 쪽으로 발달한 것 같다. 다행이라면, 산만함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나의 리스트에 없다는 것 정도. 되려 지독하다는 말을 듣고 산다. 손톱 물어뜯기와 다리 떨기는 여즉 고치지 못했지만 넘어가자, 다리 떠는 건 몸에 좋으니까?
축축한 여름. 긴 장마 시작이다. 뜨거운 피아노 연주로 몸을 데운다. 유월의 밤은 참 고단하다. 달고 쓰다. 여전히 이것이 일기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글을 적으며 어떤 것과 긴 안녕을 고한다. 이번 글도 며칠을 이어 쓰는 끝에, 유월이 꼭 이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