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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neaufgabe Oct 10. 2022

이상한 일

조금 전 설거지를 하다가 이상한 일을 경험했다. 아니 그보다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까나… 설거지는 하루 또는 이틀 정도 쌓인 것치곤 양이 많아 보였는데 그건 어제인가 그제인가 둘 중 어느 저녁에 회사로 싸들고 갈 김치볶음밥을 2인분 미리 만들어두면서 생긴 몇 안 되는 씻을 것들의 부피가 상당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한국에서 자취하는 사람들 집의 개수대가 대부분 그렇듯이 가로세로 너비가 40 제곱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한 칸 짜리 개수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설거지는 금방 끝이 날 만한 그런 설거지였다. 그런데 그렇게 도마에 거품을 묻혀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프라이팬에 거품을 묻혀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둥근 접시와 대접에 거품을 묻혀 싱크대 위에 올려놓자 개수구 쪽으로 뭔가 이상한 것들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보았을 것이 분명한 눈에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리에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에서 소름이 끼칠 만큼 낯설었기 때문에 나는 샛노란 고개들을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그것들을 보면서도 그것들의 그것들임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조심스럽게 개수구 뚜껑을 열어보았다. 개수구 안쪽으로는 다이소에서 사서 쓰는 거름망을 쑤셔 넣어두었는데 그것들은 어느새 거름망의 맨 아래 밑바닥 너머까지 뿌리를 내린 채 무럭무럭 자신들의 키를 기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콩나물이었다.

마지막 설거지를 한 게 어제인지 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회사에 가지고 갈 볶음밥을 만든 날이기는 했다. 하여간 그건 어제이거나 그제였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개수구 뚜껑 위로 튀어나온 콩나물의 머리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최근 몇달간 이 집에서 콩나물 비스무리한 것조차 먹은 적이 없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오늘은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서 집에 가면 모처럼 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쓰려던 일기는 지금의 일기와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 될 것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 ―아직 쓰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있는 일기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유감이다. 하지만 역시 별다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은 시간과 마음의 문제, 결코 심은 적 없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떤 연유로 심어졌을지 또한 알 길이 없는 그새 너무 많이 자라버린 개수대의 콩나물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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